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가 국내 상장 계획을 접고 미국 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 증시에선 10조원이 넘는 핀테크 기업 토스의 기업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우호적으로 바뀌면서 토스는 나스닥시장 등으로 IPO 행선지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한국 증시에선 핀테크 기업 외면
2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비바리퍼블리카는 이번주 국내 IPO 주관사에 국내 상장 작업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했다. 올해 2월 국내 상장을 위해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대표주관사, 삼성증권을 공동주관사로 선정한 지 8개월 만이다.비바리퍼블리카는 이르면 연내 미국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고 미국 증시 입성을 준비할 계획이다. 상장 시기는 내년 하반기 또는 2026년 초로 예상된다. 시장에서 토스 기업가치는 10조~20조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전격적으로 미국행을 결정한 건 국내 상장을 위해 홍콩 및 싱가포르 등 해외 기관투자가와 만나면서 국내외 투자자의 시각 차이를 체감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는 대부분 국내 증시보다 미국 증시에서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우호적이라고 비바리퍼블리카에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비교기업이 별로 없어 비바리퍼블리카의 사업모델을 온전히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를 비롯해 토스증권, 토스페이먼츠, 토스인슈어런스, 토스씨엑스, 토스뱅크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은행, 증권, 결제, 자산 관리 등 모든 금융 서비스를 단일 플랫폼인 토스를 통해 제공하는 ‘원 앱(One-app)’ 전략을 펼친다.
국내에서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이 대표적인 핀테크 상장사로 꼽힌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상장하면 이들 기업이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들 기업 주가는 상장 이후 하락한 뒤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도전한 케이뱅크도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해 상장 일정을 뒤로 미뤘다.
핀테크 재평가 시작된 미국 ‘기회의 땅’
반면 미국에선 성장성 및 확장 잠재력이 높은 글로벌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 전자결제 서비스 업체 스트라이프는 상장 전 지분 투자(프리IPO) 단계에서 65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스페이스X, 오픈AI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기업가치가 높은 스타트업에 이름을 올렸다. 스트라이프의 기업가치는 2021년 950억달러까지 치솟았다가 글로벌 유동성 경색으로 지난해 150억달러로 급락했었다. 최근 다시 핀테크 기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을 받으며 몸값이 다시 회복됐다.IB업계 관계자는 “국내 핀테크 기업이 당장 가파른 실적 성장세를 보인 적이 없는 데다 플랫폼 사업모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투자 심리가 경색됐다”며 “미국에선 다시 실적보단 핀테크 기업의 성장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미국 IPO 시장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도 비바리퍼블리카에 우호적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증시는 2022년부터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등으로 이렇다 할 대형 기업의 IPO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 이슈로 인한 불확실성이 낮아지면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투자 심리 개선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토스 관계자는 “어디에 상장할지 확정하지 않은 상황으로 다양한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