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지난 27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총선)에서 15년 만에 과반 의석(233석) 확보에 실패하며 일본 정계가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자민당은 제1당 지위는 유지한 만큼 무소속 의원 영입, 일부 야당과의 연계를 통해 연립 정권을 확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다른 정당과 연대를 모색하며 정권 탈환 전략을 짤 것으로 예상된다.
이시바 ‘단명 총리’ 위기
자민·공명당이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놓친 것은 옛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준 2009년 이후 15년 만이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종전 의석이 각각 247석, 32석 등 279석이었다.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파문, 고물가 등으로 민심이 여당에 등을 돌린 결과로 분석된다.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입헌민주당은 종전 98석에서 148석으로 약진했다. 제1야당이 전체 의석의 30%인 140석 이상을 확보한 것은 2003년 이후 21년 만이다. 국민민주당도 7석에서 28석으로 크게 늘었다. 입헌민주당을 포함한 전체 야당 의석은 235석으로 자민·공명당을 넘어 과반에 이르렀다. 요미우리신문은 “정권 구성을 위한 여야 공방이 시작돼 정국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여당의 과반 의석 수성 실패로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국민 생활과 일본을 지키는 일로 직책을 완수해 나갈 것”이라며 중도 퇴임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20~30%대인 내각 지지율을 내년 7월 참의원 선거까지 올리지 못하면 ‘단명 총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시바 총리가 결국 사임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일본 역사상 가장 단명한 총리로 기록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다 “총리 지명 노려”
일본 정계에선 이시바 총리가 다른 야당을 포섭해 연정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유신회나 국민민주당 등 야당과 연계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특별의회에서 다시 총리로 선출되겠다는 구상이다. 특별의회는 중의원 해산에 따른 총선 후 1개월 내 소집되는 의회로, 총리 지명 등을 새로 하게 된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는 연정 확대를 모색하는지에 대해 “현시점에서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야당은 산술적으로는 결집을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지만 단일 총리 후보를 추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총리 지명을 노리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른 정당과 성의 있는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당장 정권 교체를 노리기보다는 내년 7월 참의원 선거 등을 고려하며 다른 야당과 연대 확대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권을 탈환하더라도 참의원에서 자민·공명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결선을 치른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의 행보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매번 참배한 극우 성향 정치인이다. 이시바 총리를 압박하며 후임자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