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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도 유연한 독보적 풍미…명불허전 '빈 필하모닉의 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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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어느덧 가장 친숙한 해외 악단이 됐다. 2021년 이후 매년 내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빈 필과 함께 내한한 안드리스 넬손스는 악단이 가장 신임하는 지휘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넬손스는 스승이자 멘토인 거장 마리스 얀손스의 후광에 힘입어 국제 지휘계의 라이징 스타로 각광받던 시절 빈 필에 데뷔했다. 그 직후인 2010년 11월 악단의 일본 투어에 동행했으며, 2020년에는 그 유명한 ‘빈 필 신년 음악회’의 포디움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내한 공연의 메인 레퍼토리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인데, 말러와 슈트라우스는 악단과 지휘자 모두에게 각별한 존재다. 두 작곡가는 모두 빈 필의 모체인 빈 국립(궁정) 오페라의 감독을 지낸 바 있으며, 그들이 남긴 후기 낭만 교향악 작품은 악단의 역량과 매력을 가장 풍부하고 화려하게 드러내는 최고의 레퍼토리로 정평이 나 있다.

넬손스 역시 젊은 시절부터 두 작곡가를 꾸준히 다뤄 왔는데, 말러 교향곡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매년 한 곡씩 선보이며 빈 필의 새로운 ‘말러 사이클’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마주한 넬손스와 빈 필의 ‘말러 5번’은 사뭇 차분하고 진지했다. 넬손스의 신중한 접근법은 다분히 사색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동시에, 각 소절과 장면에 담긴 말러 특유의 감수성을 진득하면서도 세련되게 부각하는 효과를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첫 악장 ‘장송행진곡’의 흐름과 매무새가 인상 깊었다. 그 느릿하면서도 유연하게 이어진 흐름 속에서 넬손스는 주선율 못지않게 부선율을 다듬어내는 데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그 덕분에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심경이 한층 입체적으로 부각되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한편으로는 마지막 악장에서 펼쳐질 대위법의 향연을 예고하는 듯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깊이와 공감을 우선시하는 그의 해석 기조는 계속 이어졌으나, 그 해석이 상당히 숙성됐음에도 아직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중한 기조가 지속되다 보니 악곡의 다른 면인 활력과 극적 기복이 충분히 구현되지 않은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휘자의 해석 완성도와는 별개로, ‘빈 필의 말러’를 직접 듣는 즐거움은 여전했다. 음색, 호흡, 표현 등 모든 면에서 말러의 음악과 더없이 자연스럽고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3악장에서 (오스트리아-독일의 민속무곡에 근거한) 랜틀러와 왈츠에서 우러난 표정과 풍미라든가, 유명한 4악장 ‘아다지에토’에서 두드러진 현악부의 아취 깊은 음색은 빈 필이 아니면 절대 들려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었다. 아울러 결코 소화하기 쉽지 않았을 지휘자의 해석에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1악장 말미의 트럼펫 실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으나, 3악장의 세 번째 섹션으로 진입할 때 호른이 범한 아찔한 실수는 그 여파로 전체 앙상블의 난맥상이 한동안 이어져 아쉬움을 남겼다.

1부에서는 일본의 중견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협연했다. 미도리는 오랫동안 국제 무대에서 명성을 떨쳐온 연주자답게 뚜렷한 주관과 개성이 돋보이는 해석과 치열한 연주를 들려줬다. 통상 서정적 선율미가 강조되는 1악장에서 자신만의 발음과 억양, 독특한 프레이징과 타이밍을 견지하며 소신 있게 이어나간 모던한 해석이 인상적이었고, 3악장에서 바이올린 솔로가 주제 선율을 제시할 때 순간적인 템포 이완으로 참신한 뉘앙스를 빚어낸 대목은 이날 협연의 백미였다.

넬손스와 빈 필은 앙코르로 주페의 ‘경기병 서곡’을 들려줬다. 2020년 넬손스가 지휘한 신년 음악회의 레퍼토리로, 충만한 생동감과 호쾌한 속도감이 넘치는 연주와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빈 필 사운드가 앞선 말러 연주에서 아쉬웠던 점을 보상해줬다.

그야말로 빈 필이 아니면 불가능한 최고의 연주에 상당수의 관객이 기립했고, 단원들의 안도한 표정과 지휘자의 은근한 익살을 덤으로 남기고 첫날 공연은 막을 내렸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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