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철강 탈탄소 로드맵 ⑤·끝
10월 17일, 최상목 부총리와 산업통상자원부를 포함한 관계 부처가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방문해 철강 탈탄소 핵심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을 앞당기기 위한 정부 지원을 약속했다. 정부는 총 11개월의 행정 절차를 단축하고, 세제 혜택을 통해 해당 프로젝트의 신속한 이행을 촉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포스코 역시 2030년까지 투자 계획을 공유하며 탄소중립, 수요 대응, 설비 복원 등 철강 부문 투자 방향을 위한 3가지 축을 제시했다.
설비 복원은 철강업 배출의 핵심인 고로의 수명연장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수소환원제철 프로젝트 일정을 앞당기고 저탄소 생산 체제 전환을 가속화하라는 신호를 주는데도 기업은 석탄 기반 생산 설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동하겠다는 투자 방향성을 내세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철강사가 발표한 탄소중립 계획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가, 전 세계는 왜 각국의 모든 산업에 탄소중립 계획을 요구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려면 탄소 예산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 1억 톤 배출’ 국내 철강社…2050년 탄소 예산 소진 대비 필요
탄소 예산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특정 온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전 세계가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총량을 의미한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설정한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은 배출 한도(잔여 탄소 예산)가 얼마인지 제시하는데 이때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누적 배출량, 미래 예상 배출량, 기타 인위적 영향 등을 고려한다.
IPCC는 1.5℃ 목표를 50% 확률로 달성하기 위해 남아 있는 전 세계 탄소 예산을 2020년 1월 기준 약 5000억 톤(500GtCO2)으로 추산했다. 이 한도를 초과할 경우 지구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파국을 부를 기후 재앙의 모래시계에서 남은 모래알은 약 5000억 톤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모래알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탄소중립은 이 모래알이 다 떨어져 인류의 시간이 다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고, 그 책임을 나눠 가진 각국과 산업이 어떻게 제 몫을 다할 것인지 발표하는 것이 탄소중립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 솔루션은 전 세계 탄소 예산을 기준으로 올해 한국 철강산업의 탄소 예산을 추산했다. 국가별 탄소배출량과 인구수를 고려해 한국에 할당된 탄소 예산을 산정하고, 국내 철강산업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을 활용한 결과 한국 철강산업에 남아 있는 탄소 예산은 550Mt
CO2e다. 연간 약 1억 톤을 배출하는 철강산업이 빠르게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2050년이 되기 전에 남은 탄소 예산을 모두 소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로드맵은 이 잔여 탄소 예산을 고려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철강의 약 70%는 석탄을 환원제로 사용하는 고로에서 생산된다. 전국에서 11기 고로가 가동 중이며, 이 고로들은 철 1톤을 생산할 때마다 약 2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주요 오염원이다. 그러나 철강사의 탄소중립 로드맵에는 고로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은 포함돼 있지 않다. 2023년 산업부가 발표한 ‘저탄소 철강 생산을 위한 철강산업 발전 전략’ 역시 2040년까지 고로 가동 중지나 폐쇄를 고려하지 않고 않다.
연·원료 전환이나 에너지 효율화, 탄소 감축 역부족
철강사와 산업계는 연·원료 전환이나 에너지 효율화 등 다양한 감축 방안을 내놓고 있으나, 이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고로가 배출하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 양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이는 이 대안 기술이 각각 저감할 수 있는 양은 얼마인지,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는 주체는 아직 없다.
한국 철강산업의 잔여 탄소 예산 550MtCO2e를 토대로 현재 가동 중인 고로 11대를 오래된 순서대로 폐쇄하는 시나리오를 구성해본 결과는 매우 급진적이다. 2030년까지 최소 4대의 고로를 폐쇄하고, 2034년까지는 11기를 모두 폐쇄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적용을 고려하는 다양한 감축 기술을 활용할 때 이러한 시나리오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는 철강산업에서 지금보다 구체적 수치를 들어 직접 공개해야 한다.
현재 초기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보이는 포스코 광양 제2고로 개수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그 시점부터 고로는 최소 15년의 수명을 얻는다. 2025년 개수가 완료되면 2040년까지는 고로가 계속 운영된다는 의미다. 고로의 폐쇄 계획 발표 없이 전기로를 신설하고 있는 광양제철소의 배출량은 오히려 현 수준보다 200만 톤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이미 발표한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라 2030년까지 기준연도 대비 1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줄여야 할 부담은 늘어나는데 구체적 달성 방안은 명확히 소통된 바가 없다.
우리나라 환경정책 기본법 제7조는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에 관한 내용이다. 자기의 행위 또는 사업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 또는 환경 훼손의 원인을 발생시킨 자는 그 오염·훼손을 방지하고 오염·훼손된 환경을 회복·복원할 책임을 질 것을 명시하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막기 위한 기준점이 산업화 이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산업화 시점부터 지금까지 막대한 배출 책임을 누적해온 철강산업이 탄소 예산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더 많이 써야 할 당위성은 더욱 줄어든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도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탄 기반 제강 설비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도 철강산업에 주어진 잔여 탄소 예산을 고려할 때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수소환원제철과 기술도 결국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일부라는 사실은 원론적이지만,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의 근거를 제시한다. 고로 폐쇄 여부를 고려하는 기준은 기술 도입 여부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숙제인 1.5℃ 저지선을 방어할 수 있어야한다. 임계점을 넘긴 경우에는 제출이 의미 없어질 수도 있다.
영국 100년 된 고로 폐쇄 결단 …한국도 고로 중단에 동참해야
영국의 포트 탤벗 제철소는 지난 9월 말 100년 역사를 뒤로하고 마지막 고로를 폐쇄하며 전기로 생산 체제로 전환을 선언했다. RE100을 주도하는 국제 비영리단체 클라이밋 그룹은 뉴욕 기후 주간에서 향후 1년간 전 세계가 취해야 할 7가지 기후 행동 중 세 번째를 고로 개수 금지로 제시했다. 세계적 흐름이 석탄 기반 제강의 종말을 선언하는 가운데 지금 당장 폐쇄가 불가능한 이유는 많다. 그러나 코앞에 닥친 위험 앞에서 모든 것을 셧다운한 코로나19 극복 선례가 있는 데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결코 코로나19보다 가볍지 않다.
최근 세계철강협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된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있다고 강조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혁신적 탄소저감 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대안 기술이나 글로벌 표준 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철강 탈탄소를 위한 정도(正道)는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 기반 고로의 수명연장을 멈추고 폐쇄를 시작하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류에게 주어진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알이 떨어지기 전에 철강산업은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강혜빈 기후솔루션 철강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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