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업종은 ‘오징어 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들이 탄생한 지난 3년간 산업이 너무 빠르게 발전한데 따른 성장통, 아니 그 이상의 부작용이 매우 컸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국위선양’하는 업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기로에 선 미디어 산업
드라마 수익률은 투입한 제작비를 ‘편성·PPL·판권’ 매출로 얼마나 회수해서 최종 이익을 남기느냐의 싸움이다. 그런데 PD·작가·배우 등 크리에이터들에 대한 몸값이 너무 커져 제작비가 급상승했다. 2020년만 해도 전체 회당 제작비가 7억원 내외였다면 현재는 회당 주연배우 한 명에게 들어가는 출연료만 족히 5억원이 넘는다.반면에 매출은 제작비 상승을 따라가지 못했다. 광고 수익을 메인으로 하는 방송사들이 경기 악화→광고 위축으로 편성 리쿱비율(제작비에 투자하는 회수 비율)을 낮췄고 광고 수익이 크지 않은 탓에 드라마 제작편수도 줄였다. 그나마 K콘텐츠의 제작력을 인정해주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 OTT로부터 받아 오는 판권 리쿱비율은 올라 국내 편성 리쿱비율 축소를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었지만 편성 리쿱비율 축소가 너무 가팔랐다. 즉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C)는 오르는 반면, 제작비 대비 회수하는 리쿱비율(P)은 줄어들고, 먹거리이자 수주인 제작편수(Q)도 감소해 P, Q, C의 지표가 매우 부진했던 셈이다.
그러나 감히 예상컨대 P, Q, C 지표 모두 앞으로는 호전될 전망이다. 가장 중요한 제작비가 통제되는데 주요 바이어인 넷플릭스의 개입 덕분이다. 주연 배우의 회당 출연료를 3억원으로 제한한 사례다. 제작산업 최전방에 있는 스튜디오드래곤도 크리에이터 효율화를 통한 제작비 축소에 노력하고 있다. 리쿱비율도 좋아진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 최근 국내 OTT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이를 경계한 넷플릭스가 판권 리쿱비율을 상향 제시하고 있어서다. 플랫폼·OTT 간의 경쟁 심화로 콘텐츠가 수혜를 보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편성도 확대된다. 폐지됐던 CJ ENM의 수목 드라마가 재개되고 SBS도 드라마 슬롯 확대에 소극적이지 않다. 결론적으로 앞으로는 제작비는 줄어드는 반면, 해외 판권 리쿱비율은 개선되고 드라마 수주가 늘어난다.
자고로 산업은 기업이 돈을 벌어야 투자로 이어지고 캐파 확대를 통한 국내외 외형 확장이 가능해 산업 종사자들이 모두 행복해진다. 엄청난 제작 역량, 흥행력, 콘텐츠 VFX, AI 기술을 보유하고도 산업 발전에 있어 극소수의 크리에이터들(심지어 배우 시장도 매우 양극화)만 돈을 벌고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미디어 산업은 이제 두 기로에 서 있다. 이대로 몰락할지 다시 호황을 누릴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점과 사태의 심각성을 기업뿐 아니라 크리에이터들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P, Q, C 지표의 변화로 미디어 산업은 펀더멘털이 재차 개선되는 초입에 위치했다. 3년 만의 부진을 털고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성장통 빠진 엔터 산업
엔터업종은 구조적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엔터는 기본적으로 아티스트(IP·지식재산권) 사업인데 IP의 누적 효과(지속적인 신인 데뷔 아티스트 탄생)에 따른 사업부문별 매출(앨범·음원·스트리밍·콘서트·굿즈 등)이 성장하고 있고 일본 등 아시아에 머물렀던 인지도가 북미·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이제는 유통 역할도 내재화하기 위해 팬들로 하여금 1부터 10까지 모든 덕질을 향유할 수 있는 ‘팬덤 플랫폼’을 론칭했으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아티스트 트레이닝 시스템’을 타 국가에 접목시켜 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현지 아티스트를 개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올해 론칭한 하이브의 캣츠아이, JYP의 NEXZ, 에스엠의 NCT위시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산업이 너무 급성장한 탓에 큰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산업과 기업의 규모가 너무 커지다 보니 예전과 같이 대표 프로듀서 한 명(예컨대 방시혁, 박진영, 이수만 전 총괄PD)이 모두 총괄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산업은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라는 체계로 조금 더 진화됐다.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란 한 명이 모든 아티스트들을 총괄하는 ‘톱다운’ 개념보다 다수의 독립 멀티 레이블을 구축해 각 레이블마다 아티스트 IP를 기획함에 있어 필요한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형식이다.
그만큼 빠른 결정하에 아티스트당 활동 주기를 당길 수 있고 데뷔 IP 파이프라인도 매년 꾸준히 추가될 수 있었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표현이 가능해 대중을 만족시켜왔다. 주식시장에서 엔터업종에 높은 멀티플(밸류에이션)을 적용한 주원인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JYP 가 가장 먼저 성공사례를 증명했고, 하이브는 다수의 회사를 인수하며 그 덩치를 훨씬 더 키웠으며, 에스엠도 이수만 전 총괄PD의 단독 시스템에서 벗어나 2023년 2분기부터 멀티 레이블 체제로 전환했다.
이렇게 매년 다수의 IP들이 탄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K팝의 위상이 더 커졌다는 장점도 있지만 너무 다수의 IP들이 단기간에 빠르게 론칭되다 보니 IP 콘텐츠의 ‘유사성’이 부딪친 사고가 있었다. 올해 엔터업종 하락을 견인했던 ‘하이브-어도어 민희진 전 대표’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시도로 출발했지만 갈등의 본질은 신인 IP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에서 비롯됐다. 멀티 레이블을 통한 확장성, 다양성에 대한 불확실성, 의구심을 처음으로 야기한 이벤트였다.
그렇다고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멀티 레이블에 대한 고도화 작업은 필요하나 여전히 필수다. 단독 프로듀서 1인이 모든 IP를 총괄하기에는 산업과 기업의 규모가 너무 커졌다.
지인해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
2024 상반기 미디어·광고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