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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거버넌스 개선이 밸류업의 성공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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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밸류업 좌담회






“밸류업 지수는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너무 성급하게 발표됐다”, “진정한 밸류업을 위해서는 거래소가 먼저 밸류업 돼야 한다”, “지배주주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무늬만 밸류업’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월 14일 오후 2시, 한국경제신문사 빌딩에서 진행된 밸류업 좌담회에서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밸류업이 시대적 과업임에도 불구하고, 정책 당국과 기업들의 움직임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자리했다. 한국 자본시장의 중심에서 밸류업에 기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밸류업은 주주 환원에 국한되지 않으며, 자본 배분과 경영 효율성을 통해 기업 가치를 근본적으로 높이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상법 개정과 기업 거버넌스 개선이 밸류업 성공의 분수령”이라고 입을 모았다.


- 각자가 생각하는 밸류업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이하 이 실장) “가이드라인에서 정의한 기업 가치는 재무적 가치, 비재무적 가치를 결합해 만들어낼 수 있는 현재와 미래 가치의 합을 의미한다. 수익성, 성장성,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가치, 그리고 거버넌스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종합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여전히 기업 가치가 낮기 때문에 이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밸류업이라 했다. 밸류업의 핵심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저평가된 기업의 시장 가치를 개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업 본질 가치를 의미하는 장부 가치(book value) 자체를 높이는 것이다. 많은 경우 밸류업을 PBR 개선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밸류업은 주주 환원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기업 상황에 따라 성장과 투자가 더 필요하면 그 부분에 집중하도록 제시했다. 자본 비용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고려해 배당이나 투자 활동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밸류업의 요소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이하 이 회장) “신한금융지주가 좋은 밸류업 전략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중장기적으로 목표하는 PBR과 시가총액을 설정하고, 더 나아가 주식 수를 줄이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분 가치가 커지는 효과가 있다. 신한지주뿐만 아니라 미래에셋금융도 주주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기업들이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구분하고,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방법으로 주식 수를 줄이는 등 구체적인 조치를 발표한 것은 큰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연말까지 많은 기업들이 밸류업 계획을 발표할 텐데, 앞으로 남은 두 달 동안 긍정적인 발전을 기대해볼 만하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데, 최근 밸류업이 부상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이하 이 의장)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중요한 시도였다. 어젠다를 던진 것만으로도 역할을 했다고 본다.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것은 그동안 쌓여 온 소액주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난 10~20년 동안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불평등, 인권 문제, 빈부 격차 등이 심화하면서 사회적 불만이 누적됐다. 이런 배경에서 ESG 개념도 등장했다. 이 모든 변화의 밑바탕에는 도덕성과 윤리가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부상한 흐름이 있다. 겉으로는 여전히 돈이 중요하지만 도덕이 지배하는 사회적 표준이 형성되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갑질이나 부도덕한 행동이 통하지 않는다. 권력이나 자본도 도덕적 문제가 드러나면 즉각적인 사회적 제재를 받는다. 이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회장 “주주자본주의 개념은 1971년 밀턴 프리드먼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비롯됐다. 프리드먼은 ‘기업의 목표가 주주의 이익 극대화에 집중하는 것’이라며, 결국 기업은 종업원과 사회에 기여해야만 장기적인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주주뿐만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제가 처음 여의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1988년에도 존재했다. 여전히 한국은 기업의 기본 펀더멘털 대비 저평가가 극심하다. 올해 초 대통령이 한국거래소를 방문해서 화두를 던졌고, 정부 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후 정부나 여당에 컨트롤타워가 없는 듯한 모습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신뢰를 주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가 자신감 있게 시작했고,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훌륭하게 나왔지만, 실제 추진 과정에서 경제팀의 진정성이 부족한 것 같다. 만약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지 못한다면 야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이 실장 “개인투자자들의 영향력 증가가 근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이후 특히 개인투자자 계좌 수가 급격히 늘었고, 이와 함께 주주행동주의 문화도 확산됐다. 또한 지난해 말부터 외신의 큰 호평을 받은 일본 시장의 영향도 있다. 일본은 10여 년 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PBR을 보였지만, 오랜 구조 개혁을 통해 세계에서 주주행동주의가 가장 활발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정부의 거버넌스 개혁 노력이 진심이었고, 기업의 체질이 변했고, 금융 시장의 환경도 변했다.”


- 일본에서 얻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하 김 센터장)
“상장사들이 전문적 시장참여자들과 소통했다는 것이다.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상장사와 우호적으로 소통하면서 조언을 하고 있다. 또한 밸류업을 할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기존 도쿄증권거래소는 1부와 2부, 마더스, 자스닥 등 4개의 시장으로 구성돼 있었다. 2022년 이를 프라임(prime), 스탠더드(standard), 그로스(growth) 3개로 개편하고, 상장·유지 요건을 강화했다. 여기에 밸류업 수행은 프라임과 스탠더드에만 요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실장 “일본은 수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거버넌스 개혁을 추진했다. 기업 거버넌스 코드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를 강화했다. 또한 거래소의 상장 요건을 강화하고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개혁을 촉구했다. 최근에는 대기업 자율공시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자본 비용과 주가 의식 경영을 권고했다. 일본은 크게 PBR이 1배 이상이 되도록 하고, 자본 비용은 업계 평균인 8% 이상을 유지하도록 요구했다. 반면 한국은 자본 비용보다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더 집중했다. 일본과의 차이점 중 하나는 한국은 기업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주주 환원과 밸류업에 참여한 기업에 대해 법인세 감면과 배당 소득 분리과세 혜택이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로는, 한국 대기업의 지분 구조가 대주주 중심으로 집중된 것과 피어 프레셔(동종 업계 압박)가 잘 작동하지 않는 문화가 지적된다. 반면, 일본은 지분 분산 구조와 피어 프레셔가 작동하는 문화 덕분에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이 회장 “한국이 1년 만에 거버넌스 프레임워크를 마련한 것은 대단한 성과다. 그러나 일본은 이 개혁을 10년간 준비해 왔다. 일본의 공무원들은 순환 보직을 하지 않아 한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쌓고 있다. 세계에서 어떤 투자가가 찾아와도 모든 미팅에 응한다. 한국은 순환 보직을 하면서 전문성이 축적되지 못하고, 매번 명함을 새로 교환하는 데 바쁜 실정이다. 일본은 자본시장 관련 법제도 꾸준히 개선을 해 왔다. 근간에 시스템과 제도적 차이가 있다.”


- 기업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또 높일 것인가.


이 의장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과거에는 청산 가치로 평가하거나 현금흐름할인법(DCF) 방식으로 미래의 수익을 계산하기도 했다. 기업의 자산 가치, 수익 가치, 성장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며,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자의 도덕성도 고려해야 한다. 진정한 밸류업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거버넌스 개선이 가장 중요하다. 워런 버핏은 좋은 거버넌스에 대해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유지할 만큼의 충분한 지분을 가지고 있고, 경영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 최고 경영진을 선임해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메리츠금융지주가 좋은 사례다. 조정호 회장은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전문 경영진에게 맡겨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좋은 평가를 얻었다. 둘째는 효율적인 재무 전략이다. 기업이 적정 수준의 부채를 유지하며 재무를 운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주주 환원이다.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투자할 곳이 없을 때 실행해야 한다.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성장이 필요한 시점에 주주 환원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밸류업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민주당의 코리아 부스터 프로젝트가 결합돼야 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이사회의 책임을 강화해 모든 주주를 위해 일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동시에, 정부는 세법 개정을 통해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상법 개정만으로는 기업 경영이 경직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필요하다. 특히 상속세 문제가 중요한데, 자격이 있는 후계자는 승계를 용이하게 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유사한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제도와 함께 금융투자소득세는 지금은 폐지해야 한다. 현재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투세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김 센터장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낮은 자본효율성에 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산업 중심인 동북아 3국(한·중·일) 증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자본이 효율적으로 워킹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다.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주주 환원에 소극적이거나, 계열사 지원 등에 전용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가치를 높일 것인가. 자본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산업·기업마다 제각각일 테다. 일정 정도의 정성적 슬로건은 필요하지만, 밸류업이 일률적 경로로 움직일 수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경영을 맡는 이사회(지배주주)가 기업에 본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주주들에게 회사의 정책을 잘 이해시켜야 한다. 상장사에 대한 이해관계자가 지배주주·소액주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주주들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이사회 등이 다른 주체들을 잘 고려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소수 지배주주와 다수 소액주주의 대등한 관계가 밸류업의 첩경이다. 한국 기업 특유의 지배구조인 강력한 오너십이 100%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장사의 주요 의사결정이 소수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소액주주권 강화가 단기주의적 투자자들의 기업에 대한 과도한 간섭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주장은 본질에서는 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현존하는 현상이다. 주주권 행사에 따른 단기주의적 부작용은 가상의 걱정이다.”


- 지난 9월 발표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 회장 “저희가 중요한 이벤트가 있으면 논평을 내는데, 밸류업 지수는 논평을 내기에도 적합하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였다. 원칙이나 판단 기준도 잘 모르겠다. 포함된 회사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곳들이 너무 많다. 가령 삼성전자는 밸류업을 발표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정된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실제 밸류업을 이미 열심히 하고 있고 밸류업을 발표하겠다고 공시까지 한 KB금융이나 하나금융지주가 빠진 것은 오히려 일종의 ‘괘씸죄’가 적용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 성급하게 정해진 타임테이블에 떠밀려서 발표하는 무리수를 둔 것 같다. 한국거래소는 여러 면에서 이번 기회에 반성을 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밸류업 지수 발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거래소 이사장과 임원들이 지금이라도 매일 아침, 점심을 상장 기업 대표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것이다. 밸류업에 대해 홍보하고, 다짐을 받아내고, 이사회에서의 논의 정도를 물어봐야 한다. 일본에서는 거래소 이사장이 그걸 했다. 50명, 100명을 모아놓고 발표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1대1로 눈을 마주치면서 같이 밥을 먹든 골프를 치든 인게이지먼트(관여)를 해야 변화한다. 그렇지 않고 시늉만 낸다면, 이는 이사장과 임원진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실장 “일본의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일본은 지난해 3월부터 밸류업 공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공시를 한 기업들과 하지 않은 기업들의 수익률과 재무 현황을 비교해보니,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들의 성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좋게 나왔다. 이번 밸류업 지수도 예고 공시를 한 기업들까지 포함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특정 기업을 편입하고 제외하는 과정에서, 과거 1년, 3년, 5년 성과가 좋았다는 점을 홍보했는데, 여러 연구를 보더라도 과거의 성과가 미래에도 지속되기 쉽진 않다. 그런 점에서 밸류업 지표가 좋은 기업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밸류업을 잘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도 포함하면 지수가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ESG나 비재무적 가치도 반영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김 센터장 “코스피200 등 기존 지수와의 차별성이 약하다. 밸류업을 지향하는 기업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상징적 슬로건도 부재한다. 일본은 논란도 많았지만, PBR 1배, ROE 8%라는 정성적 목표를 제시했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개별 목표는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PBR 1배, ROE 8%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작동한다. 또한 재무적 항목들만 스크리닝의 기준으로 사용돼, 질적인 필터링 기준이 없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소수 지배주주의 이해가 관철된 무리한 인수·합병(M&A), 계열사 지원 등의 이슈가 불거졌던 기업들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점이 아쉽다.”


이 회장 “밸류업 가이드라인에서 한국적 상황을 잘 반영한 부분이 비재무적 거버넌스를 포함한 것이다. 거버넌스가 좋지 않으면 밸류업은 의미가 없다. 결국 모든 밸류업을 뒷받침하는 근간은 거버넌스다. 이 부분이 간과된 것은 거래소가 밸류업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의장 “밸류업 지수가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예를 들어, 매달 기업설명회(IR)를 꾸준히 하는 기업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좋지만, 수십년 동안 IR을 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시작해 노력하는 기업, 또 배당을 전혀 하지 않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점진적으로 늘려온 기업이라면 변화율을 반영할 수 있다. 이번 지수는 3년, 5년 평균 성과만 반영해 변화와 성장을 간과하고 있다.”


- 당초 11월 4일 예정된 ‘한국 자본시장 콘퍼런스’에서 밸류업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상장하는 방안이 추진된 것으로 아는데.


이 회장 “11월 4일을 목표로 역산해보면 ETF 출시를 위해 지수는 최소 두 달 전에 완성돼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정에 쫒겨 너무 성급하게 준비한 측면이 있다. 일본도 밸류업 지수 초기에는 성과가 저조해 비판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성과 중심의 구성이 필요했기 때문에, SK하이닉스와 같은 종목을 많이 포함한 것으로 안다. 밸류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잣대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기 때문에 경영자도 3년, 5년, 10년 단위로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단기 성과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의 압박도 공무원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또 밸류업을 총괄한 부서와 지수를 만든 부서가 달라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밸류업을 위해서는 거래소가 먼저 밸류업이 돼야 한다.”


이 의장 “가이드라인의 경우 피드백을 충분히 받았고 발표도 몇 번 연기하면서 나온 반면 지수는 너무 빨리 발표된 느낌이다. 한 달만 더 시간을 가졌다면 더 나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금융주 가운데서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KB금융 주식이 가장 많이 상승했다.”


이 실장 “밸류업 지수가 수정된다면 KB금융이 1순위로 포함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선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준비를 많이 했고, 밸류업 예고 공시까지 한 KB금융 입장에선 상당히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밸류업 공시를 예고했던 기업들이 지수에 포함될 것처럼 얘기됐지만, 결국 포함되지 못했다. 이런 부분은 기업들에 실망감을 주었을 것이다.”


- 앞으로 밸류업 지수는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 일본 사례를 보면 연기금이 움직이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이 의장 “밸류업 지수가 성공하고 권위를 가지게 되면, 마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 편입되는 것처럼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선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지수에 포함되기 전에 이미 주가가 상승하면, 막상 편입된 이후에는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지수의 성과가 언더퍼폼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지수가 권위를 갖게 되면, 투자 지표로서 충분히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되고 그에 맞춰 기업들도 움직일 것이다.”


이 실장 “유관 기관들이 밸류업 펀드를 만들고, 거래소나 한국예탁결제원, 코스콤 등이 꽤 큰 규모로 지수 추종을 하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 이사장도 기금 수익성 제고에 지수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부 자산군을 전략적 자산 배분 측면에서 밸류업 지수를 벤치마크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사회책임투자 부문에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아예 새롭게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본 사례에서도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들의 성과가 훨씬 좋았던 것을 보면, 이 지수가 제대로 운영되면 투자 가치로서 유의미할 것으로 본다.”


이 회장 “일본은 여러 제도적 개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 공적연금(GPIF)의 적극적인 역할이 핵심이었다. 반면, 우리는 아직까지 국민연금의 역할이 무엇인지 불명확하다. 국민연금도 더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고 투명한 원칙 아래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GPIF가 행동주의 펀드에도 자금을 할당한다. 행동주의 펀드는 투자자 보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런 펀드에도 자금을 배분하는 것이다. 한국도 국민연금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주식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장기간에 걸쳐 주주들에게 충분한 수익을 제공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결국 기업의 몫이다. 기업 성장과 주주 환원을 통해 이러한 격차를 줄여야 한다. 기업 성장에는 설비투자, 연구·개발(R&D), M&A와 같은 투자가 요구된다. 또 주주들에게 환원을 하려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고려해야 한다. 크게 다섯 가지의 방법 중 어떤 전략을 쓸지 경영진이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밸류업은 단순히 제도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선진 경영과 거버넌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지속적으로 실행할 때 실질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


- 밸류업의 성패는 결국 대기업의 참여 여부에 달려 있지 않을까. 밸류업 측면에서 귀감이 되는 기업이 있다면.


이 회장 “저희는 발표된 밸류업 공시 기업들에 학점을 부여한다. 대체로 발표한 회사들의 성과는 좋았다. 특히, 금융 회사들이 훌륭했는데, 메리츠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다. 현대차는 대기업 중에서 매우 인상적인 발표를 했다. 포럼 회원들과 외국인 투자가들까지도 극찬을 했다. 반면, 낮은 점수를 받은 기업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키움증권은 준비 없이 급하게 발표해 부족한 점이 많았다. 미래에셋금융그룹도 최하점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거버넌스에 있다. 박현주 회장이 비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기업이 상장사의 1%에 그치는 점은 안타깝다. 10~11월에 3분기 실적 리뷰를 위해 이사회가 열린다. 시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눈치 경쟁을 하면서 발표를 미루는 것을 보면 한국 대기업의 힘이 막강해 보인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내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이지만, 진정성이 부족한 형식적인 참여가 많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실장 “아직 많은 기업이 참여하진 않았지만, 공시한 기업들은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을 이해하고, 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아 발표했다. 하지만 기업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여전히 시장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대기업들의 참여에 있어서는 국내 재벌 대기업 집단의 특성상 총수의 결정이 중요한데, 상속세 등 다양한 이슈들로 인해 주가 상승을 반기지 않는 지배주주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부분까지 개선돼야 하기 때문에, 밸류업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이 회장 “핵심 키워드는 지배주주의 인식, 상장의 의미, 그리고 주주의 권리다. 기업이 상장을 한다는 것은 일반 주주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배주주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거의 범죄에 가까운 행위 아닐까. 남의 돈을 받아 경영하면서도 주주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평소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회장들을 만나면 항상 묻는 질문이 있다. ‘지난 1년, 3년, 5년, 10년 동안 당신 회사의 총주주수익률(TSR)이 얼마입니까’라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자신의 주주가 어떤 수익률을 얻었는지조차 모른다. 일반 주주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모 기업 CEO는 ‘상법 개정이 되기 전에 후딱 해치운다’는 인식으로 시장과 주주를 대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밸류업 이전에 주요 딜을 진행해서 일반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이런 점이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이 의장 “과거에는 기업들이 아예 눈치조차 보지 않았다. 지금은 적어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20년 전만 해도 모 기업은 탐방 요청을 하자, ‘계속 귀찮게 하면 배당 안 한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한 운용사 대표가 2대 주주로서 지방의 기업을 직접 방문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일도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ESG위원회를 만들고 정도경영을 외치지만, ‘무늬만 밸류업’일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지배주주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종종 회장님들께 ‘조금만 바꾸면 주가가 크게 오를 텐데 왜 안 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애가 아직 어려서요”라는 답변을 듣곤 한다. 그런 기업은 주가 상승을 절대로 원치 않는다.”


이 실장 “정부는 밸류업 우수 기업에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적용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매년 기업의 밸류업 성과를 평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표창을 수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 체계를 제대로 운영하면, 대기업들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 투자자 입장에서 밸류업 기업을 선별하는 중요 기준이나 지표가 있다면 무엇일까.


이 실장 “최근 주목받는 지표는 TSR이다. 단순히 TSR이 높은 종목뿐만 아니라, TSR이 점차 증가하는 기업을 찾아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많이 활용되고 있는 지표로, 이를 통해 기업의 장기 성과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장 “일반 주주 입장에서 장기적인 투자 성과가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주들은 TSR로 자신의 투자 성과를 측정한다. 하지만 TSR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의미가 있다. 또 기업을 단독으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일 업종이나 그룹 내의 다른 기업과의 상대 비교를 통해 더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 TSR만으로 경영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업황 사이클이 좋을 때 성과를 냈을 가능성도 있다.그래서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의장 “정량적인 지표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성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장기적인 성과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저희가 출시한 ‘ACE 라이프자산주주가치액티브 ETF’의 경우 기본적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기본으로 선정하고, 여기에 주주환원율과 같은 정량적 지표를 활용한다. 선정된 40여 개 기업에 레터를 보내 피드백을 받을 예정이다. 만약 기업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할 의지를 보이면 점수를 높게 부여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수에서 제외할 것이다.”


- 진정한 밸류업 실현을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이 의장 “진정한 밸류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법 개정과 세제 개편이 동시에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세율 불일치 상태에서는 배당을 유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대주주의 양도소득세율은 25%인데, 배당소득세는 50%다. 대주주는 종합과세 대상이기 때문에 배당을 할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이러니 배당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배당 대신 주식을 보유한 채 매각 시 25%의 세금만 내는 게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만약 배당 소득을 분리과세해서 15.4%로 세율을 조정해주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다. 예를 들어, 소액주주에게는 15.4%, 대주주에게는 25% 세율을 부과한다면, 대주주들이 배당을 크게 늘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제도가 마련되면 기업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배당을 늘릴 것이다. 배당 소득 분리과세로 세금 부담이 줄어들면, 주주들은 자사주 매입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 현재 한국의 배당 성향은 15%인데, 대만은 33%, 일본은 50%, 미국은 평균 주주환원율이 90% 수준이다. 만약 한국도 배당 소득을 분리과세한다면, 배당 성향이 30%까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조치만으로도 코스피 지수가 40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를 꼽자면, 오직 상법 개정이 관건이다.”


이 실장 “우리나라의 기업 상장(IPO)은 매출과 수익성이 정점일 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상장 폐지는 거의 없다. 좀비기업에 대한 퇴출 제도를 거의 손보지 않은 상황이다. 상장 유지 조건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또 미국과 일본의 경우 경영진의 성과 보상을 ROE나 TSR과 같은 지표에 중장기적으로 연동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만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인센티브 설계가 가능해진다. 특히 일본은 거버넌스 코드 이행을 상장 유지 조건으로 강화했다. 2025년부터는 거버넌스 코드 미이행 시 상장폐지도 가능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ESG나 거버넌스 코드 준수를 상장 유지 조건으로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에서는 주주와의 적극적 소통이 핵심이다. 각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주주가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주주 환원에 집중하는 것이 밸류업이 될 수 있고, 또 어떤 기업은 투자 확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이 의장 “정부가 진정성을 보이려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정말로 한국 주식이 저평가됐다고 확신할까. 일본은 중앙은행이 상장 주식의 7%를 매입했다. 우리도 그런 결단이 코스피를 4000~5000까지 올릴 것이다.”


- 좋은 거버넌스 구조는 밸류업에 어떻게 기여하나.


이 회장 “이사회는 주주들이 선출한 기구로서 주주를 위해 일하는 조직이다. 경영진을 감시하고, 전문성을 가진 사외이사들이 장기 전략과 성장을 위해 조언해야 한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독립적인 이사회다. 법적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사들의 교육과 거버넌스 의식 제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외이사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저희 포럼이 의대와 협력해 여성 사외이사 과정을 운영하지만, 대부분의 교육은 법률적 리스크를 피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준이다. 주주 가치를 고려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의장 “현재 구조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적 운영이 어렵다고 본다. 이사들이 누군가의 급여를 받는 이상, 완전히 독립적인 운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주주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현주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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