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연휴에 여행을 다녀온 친구와 만났다. 동남아시아에서 귀국할 때 밤 비행기를 타기 십상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이 울음소리와 칭얼거림으로 고역을 겪었다고 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최근 해외여행객이 늘고 있는데, 이와 함께 옹알이와 걸음마를 연습 중인 소아를 찾아보기도 쉬워졌다. 작년에 자녀를 출산한 회사 선배가 “생후 24개월 전까지 비행기 요금이 저렴해 이 시기에 여행을 가는 게 꿀팁”이라고 했다. 비행이 낯설어 울음이 터진 아기와 울음소리를 군말 없이 들어야만 하는 동승객들이 떠올랐다.
마침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이 추천됐다. 아기와 함께 비행기를 탄 엄마의 부탁으로 아기를 돌봐주신 옆자리 할아버지를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 속 아기는 할아버지 덕에 까르르까르르 웃고 있었는데, 댓글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첫째, 영상이 참 훈훈하다는 것이었다. 저출생 시대에 널리 퍼져야 할 ‘아이를 키울 때 온 마을이 합심한 모범 사례’라는 평이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웃는 소리건 우는 소리건 대부분 승객에게는 멈추길 바라는 소음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아기의 웃는 얼굴은 누가 봐도 아름답지만 소리만 들었을 땐 웃는 것과 우는 걸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이를 자꾸 웃기며 놀아주는 건 다른 승객에게 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유아 동승객이 많은 비행은 내게도 썩 반갑지 않다. 머리로는 “나도 울기밖에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해한다. 다만 감정적으로는 단잠을 깨우는 울음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말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다니 부모 욕심 아니야? 저 때 여행해봐야 아기는 기억도 못할 텐데” 같은 부정적인 생각도 하게 된다.
‘노키즈존’ 찬반론이 떠오른다. 저출생 시대에 아이를 관대한 마음으로 보듬어줘야 한다는 건 진리일 것이다. 다만 요즘에는 돈을 내고 노키즈존을 선택하는 입장도 이해하게 됐다.
만약 내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데, 이 마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이는 익숙한 곳에서 편안히 쉬는 동안 부모는 자유롭게 재충전할 수 없는 것일까?
결혼 이후 종종 요새 젊은이들은 여행이나 취미 생활, 커리어 개발을 한다고 애를 안 낳는다는 잔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아이를 낳아봐야 그 행복을 안다’는 말이 단골 청취 리스트에 추가됐다. 도리어 되묻고 싶다. 아이를 낳기 전이라 그 행복은 알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지나친 관심과 간섭은 도움이 되기보다 반발심만 키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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