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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K바이오 경쟁력 갉아먹는 코스닥 상장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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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경영했지만 이렇게 힘든 경우는 처음 봅니다.”

신약 개발업체 대표인 60대 A씨는 최근 유동성 위기에 몰린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후 자금 5억원을 몽땅 털어 넣었다. 직원들도 모두 내보내 사실상 1인 기업이 됐다. 그는 “상장 유지 요건이 걸림돌이 돼 투자 유치가 안 된다”며 “창업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년째 투자 혹한기를 겪고 있는 국내 바이오업계가 20년 된 코스닥시장 상장 규정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법인세 비용 차감 전 당기순손실’(법차손), 매출 요건 등이다.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의 50% 이상 법차손이 발생하거나 매출이 30억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신약 개발에 더 많은 연구개발(R&D)과 임상 비용을 투입해야 글로벌 경쟁이 가능하다”며 “법차손 요건은 신약 개발이 잘될수록 투자자들이 떠나도록 하는 독소조항”이라고 한탄했다. 신약 개발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 단계까지 가지 않은 R&D 투자는 모두 비용으로 처리돼 법차손만 늘어날 뿐이다. 신약 개발에 평균 10년, 1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바이오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제조업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바이오헬스 분야 기술평가 특례상장 기업의 83%가 법차손 요건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어떨까. 세계 최대 리보핵산간섭(RNAi) 치료제 개발사 앨나일람, 노보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경쟁사인 바이킹테라퓨틱스 등은 막대한 R&D 투자로 수년간 매출이 0원이거나 수천억원의 법차손을 기록하고 있다. 모더나 역시 2010년 설립 후 10년간 이익을 내본 적이 없다. 한국경제신문이 더올회계법인에 의뢰해 나스닥 상장 200대 바이오 기업에 법차손, 매출 등 코스닥 상장 요건을 적용했더니 32.5%가 상장폐지 직전인 관리종목 대상으로 분류됐다.

다수의 국내 바이오 기업이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신약 개발을 포기하고 있다. 제빵·화장품·손세정제 회사 등을 인수하기도 한다. 매출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다. 부실 기업을 걸러내기 위해 만든 상장 규정이 오히려 한 우물을 파지 못하게 하는 불량 기업이 되도록 유도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는 없는 법차손 같은 상장 규정은 비단 바이오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R&D 투자가 필요한 우주·첨단 소재 기업들이 2~3년 뒤 겪게 될 문제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산업 기반이 무너진 다음에 수습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한 바이오 기업 대표의 경고가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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