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를 상대로 주주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가 한국인삼공사를 1조9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KT&G 이사회에 제안했다. 매각 계획이 없는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이사회에 먼저 제안한 것은 한국에선 사실상 처음 시도되는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식이다. 올초 주주총회 이후 잠잠하던 KT&G가 또다시 분쟁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FCP는 이날 KT&G 이사회에 한국인삼공사 지분 100%를 1조90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인수의향서(LOI)를 보냈다.
한국인삼공사는 1999년 KT&G가 홍삼 사업 부문을 현물 출자해 100% 자회사로 설립한 회사다. ‘정관장’이 한국인삼공사의 대표 브랜드다. 지난해 매출 1조3691억원, 영업이익 1031억원을 기록한 알짜 회사다.
인수 제안 가격인 1조9000억원은 지난해 한국인삼공사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에 멀티플 10배를 적용해 산정했다. 이상현 FCP 대표는 “지난해 초 방경만 KT&G 사장(당시 수석부사장)이 기업설명회(IR) 자리에서 한국인삼공사는 EBITDA 멀티플 7~8배의 가치가 적정하다고 밝힌 바 있다”며 “이보다 50%가량 높은 가격을 인수가로 제안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낯설지만 이사회에 먼저 인수 의사를 전하는 건 미국 등 자본시장 선진국에선 흔한 M&A 방식이다. 미국에선 이사회가 해당 제안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제안을 받아들이고 매각을 결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안에 반대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명확히 밝히거나 더 좋은 조건을 역제안한다.
다만 한국에선 KT&G 이사회가 FCP의 제안에 공식적으로 답변을 내놓아야 할 의무는 없다. KT&G가 알짜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를 팔 가능성도 작다. 그런데도 FCP가 KT&G 이사회에 한국인삼공사 인수를 제안한 건 한국인삼공사 저평가 문제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이사진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외국인 주주가 많은 KT&G는 FCP의 제안을 일방적으로 뭉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FCP는 2022년부터 한국인삼공사를 KT&G에서 분할 상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국인삼공사의 기업 가치가 KT&G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KT&G 측은 한국인삼공사가 저평가된 상황도 아니고, 한국인삼공사를 분할할 경우 KT&G와의 시너지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