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인도인 프리야 볼라르(21)는 하마터면 한국행 꿈을 접을 뻔했다. 한국 대학 학부과정 입학에 필요한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3급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첸나이 세종학당’에 다닐 계획이었는데 넘치는 대기자로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독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도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 교육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외교부가 지원하는 재외한글학교는 2019년 9곳에서 지난해 6곳으로 오히려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도 8곳뿐이다. 볼라르는 "시험에 한 번 떨어졌을때는 유학을 못 가는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재외한글학교는 200곳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재외한글학교는 1433곳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735곳)에 비해 17.4% 감소했다. 재외한글학교는 재외동포단체가 자발적으로 설립해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에서 인증·지원받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경영난을 겪은 한글학교가 폐쇄된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210곳이 휴교 및 폐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우 한글학교를 한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례가 많은데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한번 문을 닫으면 다시 열기 어렵다.
볼라르처럼 한류 콘텐츠를 계기로 한국어를 배우길 원하는 외국인은 6개월~1년씩 ‘수강 대기’하는 게 예삿일이 됐다. 이민 2·3세대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치려는 재외동포가 많은 미국에서도 대기가 기본이다.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최모씨(38)는 “일곱 살 아이를 한글학교에 등록시키려고 했는데 가을학기 등록이 조기에 마감돼 1시간 거리에 있는 곳에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질 높은 한국어 교육과정을 갖춰 인기가 높은 세종학당은 넘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248곳의 세종학당은 문체부 산하 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이 운영한다. 지난 2월 기준 세종학당에 입학하기 위해 대기하는 외국인은 1만5698명으로 지난해(7840명)에 비해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아시아에선 그나마 세종학당이 146개(30개국)에 달하지만 최근 한류 콘텐츠가 급부상한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대기자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어 열풍’을 활용해 한글을 적극 보급하기 위해서라도 해외 한글학교를 대대적으로 확대 재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종학당재단이 지난해 수강생 1만5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한국어 학습 목적(이유)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34.0%)이 가장 높았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23.6%), ‘한국 유학’(19.7%), ‘한국 기업 취업’(12.1%) 등의 순이었다. 과거엔 한국 기업에서 일해야 하는등 '실용적 목적'이 1순위였다면 이젠 한국과 한국 문화 그 자체가 좋아 배우려는 이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문체부 관계자는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1만개가 넘고 외국에 한류 동호회가 1600여 개에 달하는 만큼 한국어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지 양성 등 안정적 교사 확보 방안을 마련해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한국어 교육 기관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지형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는 “해외 세종학당에 한국인 교원을 파견하는 형태다 보니 인력 수급이 어렵다”며 “현지에 정착해 한국어를 가르칠 외국인 한국어 교사 양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