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6시30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루브르 궁전의 카루젤 광장은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의 ‘2025 봄·여름 패션쇼’에 참석한 유명인을 보러온 인파로 북적였다.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둥’과 ‘탁’ 소리가 느리게 반복되는 배경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루이비통 쇼가 펼쳐진 곳은 루브르 궁전 동쪽에 있는 정원인 쿠르 카레다. 거울로 외벽을 감싼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루이비통의 상징인 여행 트렁크를 활용해 만든 독특한 런웨이가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꺼지자 런웨이가 바닥에서 솟아오르며 무대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보헤미안·물방울 무늬…7080의 귀환
9일간 이어진 파리패션위크의 대미를 장식한 루이비통 쇼에서 가장 돋보인 건 ‘레트로(retro·복고주의)’ 트렌드였다. 어깨를 과장한 파워숄더 재킷,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주름 스커트 등 1980년대 감성이 묻어났다. 루이비통은 무릎 길이의 바지, 해군 스타일의 매듭으로 묶은 스커트, 퍼프 소매로 어깨를 부풀린 재킷 등 18세기 패션의 특징도 적용했다. 한쪽 다리만 있는 바지 등 새로운 형태의 패션, 반짝이는 소재를 활용한 미래주의적 디자인도 함께 선보였다.
어깨에 패드를 넣은 파워숄더 재킷은 생로랑 컬렉션에도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서 1980년대 출시되기 시작한 파워슈트가 재현된 것이다. 파워숄더와 오버사이즈 실루엣, 셔츠와 넥타이까지 갖춘 게 특징이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1970년대 보헤미안 스타일의 유행은 내년 봄·여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보헤미안 스타일의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는 헐렁한 실루엣과 자수, 레이스, 프린지(장식용 술) 등이다. 이자벨 마랑은 이번 쇼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옷을 연상시키는 프린지 장식의 가죽 재킷, 화려한 패턴의 실크 원피스 등을 선보였다.
구찌의 전성기를 이끈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발렌티노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 데뷔 무대도 펼쳐졌다. 미켈레 CD도 발렌티노 첫 컬렉션에서 리본, 물방울 무늬, 레이스, 베일 등을 적극 활용해 레트로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추·지퍼로 실용성 높인 에르메스
‘맥시멀리즘’보다는 실용성을 앞세운 브랜드도 많았다. ‘작업실(workshop)’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에르메스 쇼가 그랬다. 나무틀과 캔버스로 작업실을 표현한 에르메스의 런웨이에서는 가죽, 메시, 데님 등 멋스러우면서도 편안한 소재를 사용한 컬렉션이 차례로 공개됐다. 지퍼와 단추를 활용해 같은 옷이라도 착용하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번 컬렉션의 특징이다. 롱스커트 옆면에 지퍼를 달고, 재킷 전면에 단추 여러 개를 달아 원하는 만큼 옷을 열거나 여밀 수 있게 했다. 앞치마에서 영감을 얻어 상의 전면부에 주머니나 볼펜꽂이를 적용한 디테일도 눈길을 끌었다.에르메스는 실용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시스루(속이 비치는 옷)를 통해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그물처럼 생긴 메시 소재를 사용해 몸의 실루엣을 드러낸 것이다. 메시 팬츠에 가죽 부츠를 함께 신어 다리의 곡선을 보여주는 룩도 선보였다.
디올은 파리올림픽과 고대 여전사에게서 영감을 얻은 듯한 스포츠 웨어를 대거 내놨다. 예술가이자 프로 궁수인 사그 나폴리가 화살로 과녁을 맞히는 퍼포먼스로 시작한 디올 쇼는 파일럿의 유니폼에서 유래한 보머 재킷, 가죽 트랙슈트, 패러슈트 팬츠, 복싱 슈즈 등 스포티한 컬렉션이 주를 이뤘다.
파리=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