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로 둘러싸인 산업도시 경남 창원이 조각 작품들의 장식장으로 다시 변신했다. 지난 27일 개막한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를 통해서다. 조각 작품을 조명하는 국내 유일의 비엔날레로, 올해 7회를 맞이했다. 창원은 김종영(1915~1982), 문신(1923~1995) 등 유명 조각가를 배출한 고장이다. 비엔날레의 전시감독을 맡은 현시원 감독은 창원의 상징적인 장소 네 곳을 전시장으로 활용해 177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비엔날레 본전시는 창원 용지호수 바로 앞에 자리한 의창구 성산아트홀에서 시작된다. 이전 비엔날레와의 차별점은 건물 바깥 공간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건물 유리창, 마당, 공용 공간에도 작품을 들여놨다. 전시장을 들어오며 가장 먼저 보이는 홍승혜 작가의 작업이 이런 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성산아트홀 로비 큰 유리창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모던타임즈’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업은 홍 작가가 산업도시인 창원과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가 닮았다는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건물 안에 비치는 그림자가 변하는 것이 작품의 포인트다.
공간을 100% 활용하기 위해 아트홀 곳곳에 작품을 세운 것도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이다. 로비 빈 공간에서 관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백남준의 대형 설치작업 ‘창원의 봄’이 그렇다. 구내식당도 전시 공간이 됐다. 타이베이에서 온 작가 루오 저쉰은 천장을 뜯어 그 내부에 작품을 설치했다. 벽 뒤에서 건물을 구성하는 파이프, 전선 등이 신체 내부 장기들과 비슷하다는 데 주목했다.
성산아트홀을 벗어나도 비엔날레는 계속된다. 다음 장소는 1974년 발굴돼 국가유적지로 지정된 조개 무덤인 성산패총 고분. 전시장이자 무덤 속으로 들어서면 정서영 작가의 사운드 기반 작업이 울려 퍼진다. 공간 자체를 하나의 큰 조각으로 만들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성산패총 유물전시관 테라스에는 대형 용수철이 놓였다. 최고운 작가가 내놓은 장소 특화형 작품이다. 그는 창원에 머물며 매일 이곳을 찾아 조각의 각도를 고민했다.
1978년 창원산업단지 안에 설립된 동남운동장에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놓였다. 2006년부터 경기도미술관에 있던 정현 작가의 12m 목전주를 옮겨 온 것. 그가 전국 유일하게 남은 목전주 나무를 창원 변전소에서 겨우 찾아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도 비엔날레 무대가 됐다.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이 고향 마산으로 돌아오며 타일 하나까지 골라 조성한 미술관이다. 이곳엔 미국 작가 크리스 로의 작품이 놓였다. 그가 창원에 와서 느낀 감정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로는 창원을 찾아와 조용하고 침착하다며 ‘졸린 도시’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177점으로 전시작 수가 적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500여 점이 전시된 광주비엔날레, 349점이 전시된 부산비엔날레와 비교된다. 무엇보다 177점 중 단 40여 점만 신작이다. 비엔날레는 11월 10일까지 이어진다.
창원=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