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한국항공우주)가 가상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20년 넘게 개발해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더 완성도 높은 시뮬레이터를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필리핀, 폴란드, 싱가포르 등 해외 시장도 공략하겠다는 목표다.
KAI는 고정익, 회전익 등 두 가지 분야의 시뮬레이터를 주로 제작해왔다. 고정익 분야에서는 TA-50, T-50, FA-50을 조종하는 조종사를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위한 시뮬레이터를 만들었다. 2006년부터 양산해 대한민국 공군에 납품했다. 조종사들은 비행 전 임무 계획, 비행 후 디브리핑은 물론 웹 기반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2009~2014년 개발한 전투기 KF-16 시뮬레이터는 이보다 진화했다. 공대공, 공대지 편대 전술 훈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를 높였다. 시뮬레이터끼리 상호 연동시켜 전투기에 탑승하지 않아도 전술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실제 항공기와 유사한 장비를 장착했고, 대형 비행 화면도 적용했다. 또 해상 초계기 P-3CK에는 최초로 전기 기계식 모션시스템을 도입해 훈련 몰입감을 높여 호평을 받았다.
회전익 분야에서는 수리온(KUH) 훈련체계가 대표적이다. 실제 KUH와 비슷한 조종실을 구성해 실감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작동 원리를 학습하고, 전자식 기술교범을 연계한 학습도 가능하다. 상륙기동헬기 마린온(MUH) 시뮬레이터는 2017~2019년 개발해 대한민국 해병대에 공급했다. 기본·전술 비행은 물론이고 야간 상황 대처, 화물 운용, 함상 이착륙 훈련, 편대비행 훈련, 통신·항법 훈련 등 다양한 기능을 갖췄다.
KAI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시뮬레이터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AI 시뮬레이터는 기존에 정해진 시나리오에서 벗어나 가상의 우군기와 적기를 적용해 실전에 가까운 대규모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기에 메타버스 등 최신 기술을 적용해 미래형 시뮬레이터로 항공 전력 강화에 이바지하겠다는 목표다. KAI가 지난 3월 서울대와 ‘AI 기반 전술개발·훈련용 모의비행훈련체계 개발’ 협약을 맺은 것도 시뮬레이터 고도화를 위해서다.
KAI 관계자는 “모델링·시뮬레이션(M&S) 사업자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며 “항공기 개발, 종합군수지원과 더불어 수명주기 동안 체계적 교육훈련을 제공할 수 있는 훈련시스템도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열린 ‘서울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3’에선 말레이시아, 필리핀, 폴란드, 싱가포르의 공군 고위관계자들이 KAI의 시뮬레이터를 직접 체험했다. 비행 훈련의 허들을 낮추고, 예비 조종사를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KAI 관계자는 “M&S 사업을 항공기 분야의 ‘서브 사업’으로 두지 않을 것”이라며 “기술 기반의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