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날개) 하나쯤 날아갈 것으로 각오했는데, 1년 넘게 큰 사고 없이 잘 가동되고 있습니다.”
24일 경기 김포열병합발전소에서 만난 엄경일 한국서부발전 부사장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작년 7월 말 가동에 들어간 첫 국산 가스터빈 엔진이 문제없이 잘 돌아간 덕분에 인근 38만 가구에 전기를 넉넉하게 공급하고 있어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만든 가스터빈은 자동차 엔진과 같은 발전소의 핵심 동력원이다. 이 가스터빈은 다음달 말 ‘실증 기간’(8000시간 가동)을 끝낸다. 외국산 가스터빈 못지않은 성능에 가격도 싸다 보니 실증을 끝내기도 전에 다른 발전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터빈을 앞세워 12조원 규모의 국내 발전용 가스터빈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가슴 졸였던 1년, 무사히 지나가”
이날 찾은 김포발전소 중앙제어실 계기판에 뜬 가스터빈(제품명 S1)의 출력은 200㎿(메가와트)였다. 최대 출력(300㎿)의 70% 가까이 쓰고 있는 셈이다. 50%에 불과한 서부발전의 다른 발전소를 압도하는 수치다.엄 부사장은 “첫 국산 가스터빈을 돌린다는 점에서 지난 1년은 가슴 졸이는 한 해였다”며 “성능과 품질이 검증된 지금은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스터빈을 국산화했지만, 안정적으로 가동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현장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는 피하기 힘들 것”이란 걱정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미국 GE버노바, 독일 지멘스에너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 50년 업력의 ‘가스터빈 빅3’ 제품도 고장이 나는데 1호 국산 제품이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최악의 경우 블레이드가 날아가면 내부 시설물이 박살 나기 때문에 1년 이상 수리해야 한다. 7500억원을 들여 발전소를 지은 서부발전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피해를 보는 셈이다.
하지만 두산 가스터빈은 코팅이 벗겨지는 정도의 사소한 하자를 빼면 별문제 없이 1년을 버텼다. 엄 부사장은 “리스크가 워낙 크다 보니 다른 모든 발전사는 두산 제품에 손사래를 쳤다”며 “가스터빈 국산화를 위해 서부발전이 ‘테스트 베드’를 자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에너빌, “해외까지 노린다”
그동안 국내 발전사들이 빅3로부터 사들인 가스터빈은 165개에 이른다. 이 비용만 8조원이다. 유지·보수에 4조원을 추가로 들였다. 14개 가스터빈을 가동하는 서부발전만 해도 부품 교체 및 수리에만 매년 214억원을 해외 기업에 내준다. 엄 부사장은 “해외 기업에 수리를 요청하면 부품 조달, 엔지니어 파견 등에 1~2개월씩 걸린다”며 “두산은 국내에 사업장이 있다 보니 곧바로 수리해줄 뿐 아니라 비용도 20~30% 싸다”고 말했다.서부발전은 내년 3월 김포열병합발전소에 두산 가스터빈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기존 S1보다 출력이 35.7% 높은 S1U가 들어간다. S1U 가격은 부속품을 포함해 1300억원에 달한다. 서부발전은 전남 여수에 짓는 발전소엔 최대 50%까지 수소를 혼소할 수 있는 두산에너빌리티의 S2를 들여놓을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김포발전소를 발판 삼아 국내 발전사들과 속속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아직 빅3에 비해 출력 등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지만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가스터빈이 공급 부족 상태에 놓인 만큼 두산 제품을 찾는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포=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