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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에 갇힌 동물로 뜨겁게 경고한 기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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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시 뒷골로.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3번 출구에서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5분쯤 걷다 보면 미술관이 하나 나온다. 지난해 9월 개관한 K&L뮤지엄이다. 미술관 외관은 회색 벽돌로 둘러싸여 차가운 인상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펄펄 끓는다. 곧 모든 것을 녹여 없앨 듯한 용암이 발밑을 휘감는다.

3층짜리 미술관을 화산지대로 바꿔놓은 작가는 스위스 바젤에서 온 현대미술가 클라우디아 콤테(사진). 그가 지난 2일부터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를 열어 과천의 평화로운 미술관을 뜨거운 화산 세계로 재창조했다. 전시장 전체를 작품으로 뒤덮은 거대 설치작이다.

대형 벽화, 바닥 그래픽으로 구성된 장소 특정적 몰입형 작품은 콤테가 이곳 K&L뮤지엄을 위해 만든 특별한 작품이다. 층고가 높고 막힌 곳 없이 설계된 전시공간을 직접 본 후 용암지대를 떠올리며 전시를 기획했다.

콤테는 예술을 통해 생태계 보전, 기후 변화 등 지구가 맞닥뜨린 다양한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다. 예술이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업에서도 모두 콤테의 환경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식물 작업을 선보이며 기후 변화를 경고하던 작가가 동물 작품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한 첫 번째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콤테는 미술관 전 층에 걸쳐서 마치 용암이 흐르는 듯한 환경을 제작하고자 바닥 그래픽을 사용했다. 관객의 발이 닿는 모든 공간엔 마그마 그래픽이 존재한다. 그리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흐름을 따라 곳곳에 대형 조각 다섯 점을 설치했다.

콤테는 이번 전시에서 기후 변화, 화산 폭발 등의 이유로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 다섯 마리를 조각으로 선보였다. 제일 위층을 ‘화산 폭발이 시작되는 곳’으로 꾸민 뒤 관객이 용암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며 생물들을 마주하게끔 전시를 구성했다. 각 계단과 복도에는 매머드, 이구아나, 벌새, 황금두꺼비, 물고기 등 멸종되거나 죽어버린 동물 조각이 관객을 맞이한다. 콤테는 설치작을 통해 인간에 의해 쉽게 훼손되는 생물 다양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조각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에서 특수 대리석을 가져와서 작업했다. 스위스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멸종 박제동물을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했다. 3차원(3D) 스캐너로 본을 뜨는 가장 초기 과정 외에는 모두 콤테의 손이 닿았다.

그가 대리석을 쓰는 이유도 대리석이 ‘시간의 흐름’을 담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대리석이 바다에서 퇴적을 거쳐 생성되기까지 700만 년이 걸린다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콤테는 “내가 재료로 쓰는 이 대리석이 만들어지기까지 소요된 지구의 힘, 시간의 길이를 생각하면 항상 겸손해진다”며 “소재 안에 역사가 있어 대리석을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현지에서 같이 일하는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오는 대신 국내에서 팀원을 구했다. 이 또한 환경을 소중히 생각하는 콤테의 신념과 맞물려 있다.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움직일수록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무거운 대리석을 가공하는 작업을 하는 콤테는 운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탄소발자국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다고 했다. 작업 시간을 쪼개 환경단체와 함께 나무를 심고 있다. 그는 “생물 다양성에 대해 작품으로 이야기하며 막상 현실에서는 실천하지 않는 작가는 되고 싶지 않다”며 “현지 사람들과 작업하면 새로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고 했다.

건물 밖 작은 부스에는 흙을 깔고 그 위에 대리석으로 만든 캔 조각을 놓았다. 캔을 고른 것은 인간이 매일 한번 쓰고 버리는 대표적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콤테는 알루미늄 캔을 표현하기 위해 고급스러운 대리석을 쓰는 역설적 표현 방식을 선보였다. 가벼운 일회성 소비문화가 쌓이면 지구에 무거운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는 12월 28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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