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얼마 전 보도한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무기 운용 지침 개정안’은 또 하나의 이정표다. 핵공격 억지 내지 반격을 위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폐기하고 핵 증강 쪽으로 맞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핵군축 기조의 전환이다. 민주당 정권이든, 공화당 정권이든 이런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친(親)트럼프 헤리티지재단은 2030년까지 핵탄두 80기 추가 생산을 제안했다. 미국은 25년간 핵개발에 2조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미국은 러시아와의 2010년 뉴스타트(New START) 협상에서 전략핵탄두 수를 대폭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그런 미국이 방향 전환한 배경은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북한의 핵 증강이 심상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전술핵을 사용할 뻔했다고 했다. 중국은 2022년 ‘강대한 전략적 억지력 체계 구축’을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이 500기 수준인 핵탄두를 2035년 1500기로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을 특히 자극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력 강화다. 북한은 핵군축 와해에 편승하는 듯 최근 우라늄 농축시설(HEU)을 공개했다. 낙후한 영변 원자로 가동을 통한 플루토늄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다. HEU 방식은 플루토늄에 비해 핵원료 생산이 월등하고 포착하기도 어렵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와 표준화에 성공했다는 게 우리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한국을 겨냥한 여덟 가지 전술핵 투발 수단을 배치했다. 고위력 전략핵부터 저위력 전술핵까지 두루 갖췄다. 북한은 핵탄두를 50기 이상 갖고 있다.
부품을 밀수해 만들던 HEU 원심분리기를 자체 제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김정은의 말 그대로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의미다. 2030년 핵무기를 160기까지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게다가 북한은 핵강국 러시아와 군사동맹 복원 조약을 체결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 지명자가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 진전을 ‘최대의 도전’이라고 규정한 것도 괜한 게 아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쿼드(Quad) 정상들이 폭증하는 북핵과 북·러 밀착에 대한 우려를 주요하게 다룬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한반도를 둘러싸고 핵무기 사용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한국 단독 대응으로는 어림도 없다. 자체 핵무장이든, 전술핵 재배치든, 핵우산 강화든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무엇이 우리 안보를 지키는 데 가장 유효하고 가능한 수단인지 검토해야 함은 물론이다. 당장 북·중·러에 맞서 미국의 핵우산을 더 두터이 하고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일본은 정찰위성, 공중조기경보기, 해상초계기 등 북한 핵과 미사일, 잠수함 탐지 능력이 우리보다 월등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을 보면 이런 엄중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야당은 이런 위기를 보수 정권의 대결 일변도 탓으로만 돌리고 있으나 어림도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는 평화론, 중재론을 내세운 지난 정권에서도 개발을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10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대정부 질문을 보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은 안중에도 없었다. 한·미·일 안보 협력에 대한 비판과 친일몰이, 계엄뿐이었다. 야당 의원은 국방부 장관에게 모양이 비슷한 자위대함기와 욱일기를 보이면서 어느 것이 욱일기인지 맞혀보라는 한가하고 한심한 질문을 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독도마저 내주고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주하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현실 불가능한 주장을 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 국방부 장관 청문회에서도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미국 대선 등 한반도 안보 변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찾기 어려웠다. 역시 계엄, 친일 공방으로 시간을 다 보냈다. 야당은 북한의 HEU 시설 공개에도 침묵했다. 안보 위기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위기를 과장하고 일본에 굴종하자는 게 아니다. 핵무기로 둘러싸인 냉엄한 현실을 바로 보자는 것이다. 적어도 위중한 안보 정세가 싸구려 민족주의에 가려져선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의 주적은 일본이 아니라 북한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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