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재건축 시장의 ‘틈새 매물’로 불리며 큰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었던 보류지가 최근 들어 유찰을 거듭하고 있다. 보류지는 정비사업 조합이 분양 대상자를 누락했거나 소송 등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분양하지 않고 남겨둔 물건이다.
서울 내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서 보류지를 내놓는 조합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과거 유찰 때마다 가격을 내렸던 것과 달리 조합이 오히려 가격을 올리면서 전문가들은 보류지를 매수할 때 주변 시세 평가를 더 꼼꼼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격 높이자 서울도 ‘유찰’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시장에 나왔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신반포15차 재건축) 보류지 3가구는 모두 유찰됐다. 시장에선 조합이 내놓은 가격이 유찰의 원인이라고 평가한다. 조합은 전용 59㎡ 보류지의 가격을 35억원, 전용 107㎡의 가격은 58억원으로 정했다. 가장 큰 전용 155㎡ 보류지의 가격은 80억원에 달한다.이 단지는 지난 7월 진행한 1순위 청약에서 178가구(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9만3864건의 청약통장이 몰리면서 527.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비슷한 시기에 함께 공급된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402대 1)나 마포구 공덕동 마포자이 힐스테이트 라첼스(163대 1)보다도 높은 경쟁률이었다.
일반청약에서 높은 경쟁률을 보이자 조합은 주변 시세 수준으로 보류지 가격을 높였다. 인근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59㎡의 최근 매매 가격이 36억원이었는데,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크기의 원펜타스 분양가가 16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이 2배 이상 차이 난다.
사정은 서울 내 다른 단지도 비슷하다. 조합 내홍으로 매각 계획이 취소된 서초구 서초동 ‘서초 그랑자이’의 전용 59㎡ 보류지 입찰 가격은 최고 23억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지난 7월 같은 크기의 매각 가격(25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강동구 길동 ‘강동 헤리티지 자이’의 경우 전용 59㎡ 보류지의 가격을 15억원으로 정했다. 최근 거래가(12억2500만원)보다도 높은 가격이다. 최근에는 아예 보류지 매각 계획을 포기하고 가격을 다시 논의하는 단지도 나오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보류지 가격을 낮춰도 매각에 실패했는데, 최근에는 유찰이 되면 가격이 더 오르는 상황”이라며 “강남권이라도 등락 폭이 큰 대단지는 보류지 가격이 시세보다도 높아지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 시세 자세히 살펴봐야”
보류지는 분양 누락이 없는 상황이더라도 가격을 조합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어 조합 수입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주로 활용된다. 매수자 입장에서도 공개로 입찰해 청약 때와 달리 청약통장이 필요 없다. 전매제한이나 청약자격 요건 등의 제한에서도 자유로워 돈만 있다면 원하는 매물을 바로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보류지 최저 입찰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경우에는 바로 시세차익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그러나 최근 올라온 보류지는 대부분 주변 매매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찰 가격을 결정하는 조합이 공사비 인상 등으로 사업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보류지 수익이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이어지다 보니 시세보다 저렴하게 내놓으면 조합원이 반발하기 일쑤다. 강남구의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는 주변 시세 상승을 이유로 21억원이었던 보류지 매각 가격을 25억5000만원까지 올렸다.
강남권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보류지를 싸게 내놓으면 조합장은 배임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높아진 공사비와 금융 비용 때문에 조합원이 추가 분담금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류지를 시세보다 낮게 내놓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류지 구입을 고민할 땐 주변 시세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류지는 청약 조건에 제한이 없는 대신 최저 입찰금액의 10%를 보증금으로 바로 내야 하고 낙찰받은 뒤 돌려받을 수도 없다. 계약금부터 잔금까지 내는 기간도 짧아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매각에 나섰던 노원구 ‘노원롯데캐슬시그니처’의 경우 전용 84㎡ 보류지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비싼 11억원에 책정된 바 있다”며 “잔금 납입 기간이 짧은 점 등을 감안하면 주변 기존 아파트 매입과 비교해 비용이 오히려 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