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국타이어그룹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확보 시도에 최종 실패한 직후 부재훈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기자와 만나 대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MBK파트너스는 연초부터 고려아연을 다음 타깃으로 점찍어 전열을 다졌다. 추석을 앞두고 고려아연에 대한 기습 공개매수에 나선 배경이다.
○8조원 펀드 동원한 MBK파트너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올초부터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논의해왔다. 지난해 말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과 손잡고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공격에 나선 경험이 있는 MBK파트너스가 전반적인 딜 구조와 전략을 짰다. 장형진 영풍 고문은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를 정상화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자세로 MBK파트너스 측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추후 공개매수에 성공하더라도 MBK파트너스로부터 경영권을 가져오지 않겠다는 주주 간 계약도 맺었다.
MBK파트너스는 영풍으로부터 고려아연 최대주주 지위를 넘겨받으면서 영풍과 함께 공동으로 공개매수에 나섰다. 실질적인 경영 활동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게 내줬지만 지배구조상 고려아연이 기업집단상 영풍그룹에 속한 점을 공략했다. 최윤범 회장 등 최씨 일가는 영풍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특별관계자다. 특별관계자로 묶여 있는 최씨 일가가 같은 기업집단인 영풍에 대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거나 자사주 매입을 지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상 어렵다는 점을 공략한 것이다. 그만큼 고려아연 기습 공격을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얘기다.
MBK파트너스는 곳간도 더욱 두둑이 채웠다.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땐 1조원 규모의 스페셜시추에이션 펀드가 ‘주포’ 역할을 했지만 이번엔 8조원 규모의 6호 바이아웃 펀드가 메인에 섰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전면에 나섰다. 사실상 총력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최윤범 회장, 백기사 포섭 나설 듯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이번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장악이 분쟁이 아니라 최대주주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라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는 영풍이지만 경영은 지분 1.84%를 보유한 최 회장이 맡고 있는 비정상적인 의사결정 구조로 경영이 이어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이번에 공개매수가 성공하면 의결권 있는 주식 기준 52%를 확보해 경영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영풍그룹은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 공동 경영을 끝내고 MBK파트너스가 주도하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최 회장 측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MBK파트너스 못지않은 자금력을 갖춘 우호세력을 구하는 게 급선무라는 평가다. 재벌가 오너들과 깊은 친분 관계를 맺고 있는 최 회장은 다른 대기업들을 우군으로 포섭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하려면 2조원 안팎의 자금이 필요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분쟁이 점화하면서 양측은 국민연금과 소액주주 등의 지지를 얻기 위해 치열한 명분 싸움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MBK파트너스 측은 최 회장이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건에 연루된 점 등을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최 회장은 영풍과 사모펀드(PEF)의 경영권 탈취 시도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사태 추이를 보면서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준호/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