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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금 재직자 요건' 무조건 나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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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임금 구조는 복잡하다. 급여명세서를 보면 기본급 외에 각종 수당들이 수두룩하게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서 일부 수당의 경우 지급할 시점에 재직자에게만 지급한다고 규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실무상 '재직자 조건'이라 한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통상임금의 4가지 조건을 설시하면서 '재직자 조건'이 부가된 임금의 경우 ‘고정성’이 탈락되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대법원2012다94643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당시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고, 그 후 통상임금 소송이 봇물 터지듯 제기됐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 회사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신뢰하여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들과 합의하여 각종 수당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대신 임금 인상을 해 주는 등 근로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해당 수당들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하는 등의 장치를 마련했다. 그런데 최근 다수의 하급심 판결은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을 무효로 판단하면서 통상임금을 인정하고 있고, 조만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판단이 나올 예정이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있었는데도 하급심 법원이 다시 무효로 선언할 만큼 재직자 조건은 나쁜 것인가? 외국에서는 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미국의 경우 상여금에 재직자 조건을 부가하는 것이 '이미 발생한 임금의 박탈'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되었고, 각급 연방법원은 여러 차례 이러한 재직자 조건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독일연방노동법원은 연말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조건이 유효하다고 일관되게 판단해 왔다. 최근 독일연방노동법원은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상여금에 재직조건을 부여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하면서, 상여금은 충성심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므로 기준일 이전 퇴직하는 근로자와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위 판결은 '근로자로 하여금 근로관계를 지속하도록 하는 사용자의 목적을 위한 재직자 조건은 유효'하다고 보았다.

일본최고재판소 및 하급심 판결은 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이 유효하다고 여러 차례 판단했다. 아일랜드 노동법원은 근로자가 보너스에 부가된 기준일 재직조건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 기준일 이전에 퇴직했으므로 지급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보너스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항소법원은 사용자가 기준일 재직조건을 명시하였으므로 기준일에 재직하지 않는 근로자는 보너스를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도 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을 유효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급심에서 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을 무효라고 판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재직자 조건을 무효로 본 하급심 판결들은, 퇴직일 전까지 제공한 근로에 대한 대가는 이미 발생했는데도 재직자 조건을 이유로 상여금 전부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임금 전액 지급 원칙(근로기준법 제43조)에 반하여 (재직자 조건이) 무효이므로 통상임금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즉, 근로를 제공하는 순간 임금 청구권은 이미 발생하고, 재직자 조건은 임금의 ‘발생조건’이 아닌 ‘지급조건’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재직자 조건은 이미 발생한 임금채권을 사전포기하게 하는 것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든 임금은 그날그날 근로를 하면 이미 발생하는 것인가? 퇴직금, 주휴수당은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일부 근로를 제공했더라도 전액을 지급받지 못한다(퇴직금은 계속근로시간 1년을 충족하지 못하면 이미 근로를 제공한 기간에 대한 부분도 전혀 발생하지 않고, 주휴수당도 1주 동안의 소정근로일을 개근하지 못하면 지급이 안된다). 즉, 근로를 제공하더라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임금채권이 발생하지 않게 되는바, 그러한 조건은 임금의 ‘발생조건’이다. 그 외에도 가족수당의 ‘가족관계’, 주택수당의 ‘특정 근무지 근무’, 근속수당의 ‘일정기간 근속’과 같이 기타 수당에도 그 수당 발생조건을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정기상여금의 경우에도 지급일에 재직한 경우에만 지급하겠다고 하는 것은 장기 근속을 권장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으로,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임금채권이 ‘발생’하지 않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 ‘월 200시간, 시급 1만원’으로 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특정 급여지급일(예컨대 분기)까지 재직하면 시급 4000원을 추가로 소급해서 지급한다는 계약을 체결하면 어떠한가? 이것을 무효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위 근로계약은 사실상 분기에 재직자 조건으로 상여금 240만원[240만원=200x4000x3]을 지급하는 것과 동일한데, 다만 재직자 조건으로 시급을 사후에 인상해 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위 시급계약이나 재직자 조건의 정기상여금은 재직자 조건으로 금원을 추가로 지급한다는 것에 실질적 차이가 없다.

한편,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다수의 대법원 판결은 정기상여금에 부여된 재직자 조건을 유효하다고 판단해 왔고, 심지어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는 하급심 판결(세아베스틸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동일한 판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기업들은 이러한 법원의 판단을 신뢰하여 노사 협의를 통해 통상임금 범위를 확정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법원이 기존 다수의 판결과 달리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을 무효로 판단한다면, 사법부에 대한 불신, 수시로 변경되는 대법원 판단으로 인한 시장의 혼란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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