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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초대형 인수합병(M&A) 거래가 고꾸라지게 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반대를 표명한 데 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50억달러의 해당 거래를 중단시키는 행정조치 방침을 밝히면서 지난 1년간의 노력이 종지부를 찍을 우려가 커졌다.
글로벌 대형 M&A가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 금리인상 국면 이후 극심한 가뭄을 겪던 M&A 거래가 협상 테이블로 다시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올들어 글로벌 M&A는 10년 평균보다 여전히 17%가량 낮은 수준이지만 작년 동기간보다 29% 증가했다.
잇따라 무산되고 있는 글로벌 '메가딜'
8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난관에 부딪힌 글로벌 메가딜은 이 뿐만이 아니다. 스페인 은행 BBVA와 방코 데 사바델의 합병 협상이 결렬됐다.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한 법원은 미국 식료품 업체 앨버트슨과 크로거 합병이 가격 인상 우려가 있다며 이를 막아야 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FTC) 주장을 고려했다. 일본에선 편의점 세븐일레븐 운영업체인 세븐앤아이홀딩스가 캐나다 유통업체 ACT의 인수 제안(5조5000억~6조엔)을 거절하면서 일본 기업에 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 기업 인수가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현재 대규모 M&A시장이 활기를 띨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보고 있다. 주식 시장 호황으로 인수가는 높아졌지만 시장 강세는 대형 거래를 예고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놓고 있고, 회사채와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가 좁혀지면서 자금 조달 시장이 매력적이란 평가다.
시장에서 '낙관론'이 나오면서 빅딜이 잇따를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대형 인수 거래 자문을 맡는 투자은행들의 주가가 우상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설명이다. 저평가 상태인 영국 증시 상장 기업들과 친시장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도 해당 기업으로 거론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년간 기업 수익과 기업 가치는 급상승했지만 대형 M&A거래 건수는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2004년 이후 100억달러 이상 가치를 지닌 미국, 유럽 상장 기업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100억달러 이상 M&A는 전체 거래에서 5분의 1 수준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메가딜이 사라진 이유
이코노미스트는 이처럼 메가딜이 사라진 이유로 경영진들이 과거 사례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지오프와 제이 게이 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메가 딜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거나 인수기업의 부를 증가시킨다는 결론을 내린 연구는 2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2007년 미국 유틸리티 회사 TXU는 사상 최대 규모의 차입매수로 사모펀드에 인수됐지만 7년도 되지 않아 파산 신청을 했다. 2022년 디스커버리와 타임워너 후계자인 워너미디어의 합병으로 탄생한 미국 거대 미디어 기업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이미 결별을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메가딜의 유행은 지나가 버렸다고 지적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은 올초 세 개의 회사로 분할을 완료했다. 2000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M&A를 성사시켰던 보다폰은 현재 조용히 사업을 매각하고 있다. 급부상하는 빅테크들도 예전과 달리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등 비교적 적은 규모의 투자에만 매달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메가딜에 대해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정치권 전반에 반독점 이슈가 확산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690억달러에 액티비전(Activision) 인수를 두고 규제 당국과의 법적 다툼에서 승리했지만 거래 완료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들이 처음부터 대형 거래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국경 간 거래 문턱도 높아졌다. 국가 안보도 반독점 우려만큼이나 글로벌 M&A시장의 변수로 부상했다. 미국의 외국인 투자 감시 기관인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는 최근 몇 년간 더 엄격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규정이 확산되면서 딜메이커는 국가 안보에 대한 정의가 확대되고 규제가 복잡해지는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며 "일본이 US스틸을 인수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