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인권과 환경 보호 의무를 다하도록 규정한 유럽연합(EU)의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이 지난 7월 발효됐다. 지침 적용 대상이 매출과 종업원 수 등 일정 수준 이상의 대기업에 국한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망 범위가 원자재와 부품의 조달부터 제품 디자인과 설계, 운송 보관 및 유통 등 사실상 전 단계에 걸쳐 있어 실사 의무기업의 공급망 안에 있는 모든 기업이 실사에 대비해야 한다.
실사는 실제 현장에 나가 검사를 한다기보다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예방하며 시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실사 의무기업은 계약상 보증을 통해 1차 협력사에 실사 의무를 다하도록 요구하고,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에 계약상 보증을 맺도록 요구하는 등 계단식으로 전 공급망에 걸쳐 실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실사를 위해서는 먼저 기업 내 실사 내재화가 필요하다. 기업은 행동 강령과 규칙 등 실사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자회사나 협력 업체 등에 공유해 의식화해야 한다. 공급망 실사 지침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UN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 또는 ‘OECD 기업 책임경영을 위한 실사 지침’ 등을 참고해 실사 정책을 수립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공급망 내 부정적 영향을 평가하고 개선해야 한다. 공급망 내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영역을 파악하고 가능성과 심각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설정해 이를 예방하거나 시정하는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공급망 내 협력 업체와의 계약 조건을 검토해 인권 및 환경 보호와 관련된 조항을 추가하거나 공급망 내 기업들과 함께 기준을 준수하도록 관리하고,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니터링과 실사 공시를 준비해야 한다. 기업은 실사 정책 및 공급망 내 기업의 실사 준수 여부 등을 관찰해야 하며, 모니터링 결과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실사 정책이나 식별된 부정적 영향, 개선 조치 등을 현행화해야 한다. 아울러 직접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은 이행 내용을 연 1회 자사 홈페이지에 공시해야 한다. 2029년부터는 유럽 통합 전자공시 시스템(ESAP)에 이 정보를 제출해야 하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공급망 실사 지침은 EU의 ‘강제노동 결부 제품 금지규정’ ‘배터리 규정’ ‘산림 전용 방지법’ ‘기업 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등에서 요구하는 인권 및 환경 보호 의무와도 연계돼 요구 사항을 신속히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사 준비 작업에 단기적으로 비용과 노력이 들겠지만, 결국에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공급망 실사 지침은 2027년부터 매출 규모가 큰 기업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되므로 유예 기간에 지침과 관련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EU 회원국 상황에 따라 추가 요구 사항을 포함할 수 있어 회원국의 입법 내용을 지켜볼 필요도 있다.
임태형 KOTRA 브뤼셀 무역관장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