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의 강점은 매 시즌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풍부한 인재풀이다. 주니어시절부터 국가대표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점프(3부).드림(2부)투어를 거치며 매해 현역선수들을 무섭게 위협하는 '수퍼루키'를 탄생시켰다. 지난해 KLPGA대상을 수상하고 올해 3승을 거둔 이예원(22), 지난해 '루키 3인방'으로 경쟁구도를 만들어 여자골프 슈퍼스타로 떠오른 황유민(21) 방신실(20) 김민별(20)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루키들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수확한 유현조(19), 임지유(18)가 기대를 받으며 정규투어에 데뷔했지만 상반기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 네번째 메이저대회 KB금융 스타챔피언십(총상금 12억원)에서 '대반격'이 일어났다. 8일 경기 이천 블랙스톤 이천GC(파72)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루키' 유현조가 성유진(24)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정규투어 첫 해에 메이저대회에서 첫 승을 차지한 것은 2001년 배경은(신세계배 제23회 KLPGA 선수권대회) 이후 역대 8번째이자 2013년 전인지(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 이후 11년 만이다.
◆11년 만의 메이저서 첫승 루키
유현조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정규투어에 입성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따내 KLPGA 정회원 자격을 따냈고, 정규투어 시드순위전 5위로 올 시즌 KLPGA투어에 데뷔했다. 평균 드라이버샷 251.61야드를 보내 올 시즌 장타부문 8위에 올랐을 정도로 장타가 강점이다. 올해 18개 대회에 출전해 17차례 커트 통과했고, 4번의 톱10을 달성했다. 안정적인 신인왕 레이스 1위. 하지만 골프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킬 정도로 강렬한 활약을 남기지는 못했다. 상반기 출전한 대부분의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오버파를 쳐 경험 부족을 드러내기도 했다.
유현조가 달라진 것은 지난 6월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부터다. 최종라운드에서 흔들리지 않고 언더파, 최소 이븐파를 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대회에서 10위권 이내 성적을 올렸다. 유현조는 "정규투어에서 매주 대회를 치르다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페이스를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정규투어의 빠른 그린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며 "대회를 치를수록 조금씩 적응이 됐고 시즌 중반께부터 페이스를 조절하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잃을게 없는 루키인 것이 장점" 담대한 플레이
1타 차 단독선두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유현조에게는 루키가 메이저대회 챔피언조의 부담을 이겨낼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이 따라다녔다. 동반자의 면면도 유현조의 부담을 더했다. 올 시즌 3승을 몰아치며 최고의 기세를 올리고 있는 배소현(31), 국내에서 2승을 올린 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를 경험하고 돌아온 성유진(24)과 함께 경기했다. 그래도 유현조는 당차게 "내 무기는 잃을 것이 없는 루키라는 점"이라며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우려대로 전반에 유현조는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5번홀(파5)에서 티샷이 왼쪽으로 크게 감긴데 이어 러프에서 샷 실수를 내 보기를 범한 그는 이어진 6번홀(파4)에서는 그린플레이 실수로 1타를 더 잃었다. 9번홀(파4)부터 3개홀 내리 버디를 잡아내며 단숨에 언더파로 돌아섰다.
루키답지 않은 영리한 플레이가 빛을 발했다. 장타가 강점인 유현조이지만 이날 단 한번도 드라이버를 잡지 않았다. 그는 "이 코스에서는 공격적인 플레이보다 안정적, 페어웨이 지키는게 맞다고 생각해 3번 우드를 많이 잡았다"고 말했다. 긴장감 탓에 티샷이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다행히 큰 실수로 이어지지 않아 더이상 타수를 잃지 않았다.
그린에서의 강심장도 눈길을 끌었다. 12번 홀(파4)에서 두 번째샷 미스로 볼을 그린에 올리지 못해 위기를 맞았으나 2m 가량의 파퍼트를 성공시켰고, 성유진이 공동선두로 추격해온 13번홀(파3)에서 1.8m 버디퍼트를 잡아내며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이어 17번홀(파4)에서는 18m 버디퍼트를 잡아내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우승을 확정지은 뒤 유현조는 "어제 잠을 설칠 정도로 긴장했지만 '우승보다는 상금 순위라도 올리자'고 생각하며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며 "같은 조의 배소현, 성유진 언니가 워낙 감이 좋고 내내 긴장감을 주셔서 끝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몇주 지나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천=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