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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
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이다. ‘철의 조각가’ 존 배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교수(87)는 자신의 작업을 번스타인의 이 말에 비유한다. 가벼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목의 흔적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철 조각들은 연약하되 단단하고, 닫힌 듯 열려 있다. 철이 갖는 단단하고 무거운 이미지는 그의 연금술을 거쳐 한없이 부드럽고 날렵한 유기체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달 28일 서울 소격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 존 배 ‘운명의 조우’ 전시에서 만난 그는 “공간에 입체적으로 그린 드로잉과 같다”고 했다. 그의 국내 개인전은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전시 ‘In Memory’s Lair’ 이후 10여 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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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결과물을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영감을 통해 점과 선을 연결해 완성했습니다.”
담담한 그의 말은 사실 쉽게 믿기지 않는다. 거대한 덩어리 안 철사 조각들은 섬세하고 정교하게 이어져 안과 밖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모를 이 조각들은 그가 수학, 과학과 천문학, 발레와 음악, 자연 등 미술 외의 영역을 탐구하며 얻은 아이디어가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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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배는 1974년 만든 이번 전시의 대표작 ‘Involution(대합)’을 설명하며 “위상수학(topology·연속적 변환에 대해 불변의 성질을 다루는 현대수학의 한 분야)에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것에 매료돼 만든 작품”이라며 “안에서부터 이어져 나오면서 어떻게 끝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하나 연결하며 대화한 결과”라고 했다.
이번 전시엔 초기 강철 조각과 연대기별 주요 철사 조각, 드로잉과 회화까지 40여 점을 선보인다. 1층과 지하 1층에선 작가의 1960년대 초기 작품부터 1990년대 작품까지 아우른다. 갤러리 전시라기보다 박물관에서 열리는 회고전의 성격이 강하다. 1970년대 작품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존 배는 당시 위상수학의 원리를 연구하며 ‘공간 속에서 드로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공중 속의 틀에서 작업했다. 가로와 세로 길이 100㎝가 넘는 대형 철 조각이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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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