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 실세’와 ‘모피아의 대부’가 붙었다고들 한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친인척에게 우리은행이 350억원의 대출을 부당하게 취급한 사건을 두고 말이다. 외견상으론 그럴듯해 보인다.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위원장을 지낸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을 겨누고 있으니 말이다.
이 원장은 “해당 사건이 (금감원에) 제때 보고되지 않은 건 명확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8월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고 했다. “대응 방식을 볼 때 ‘나눠먹기 문화’가 팽배하다는 시각을 받는 조직에 대한 개혁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9월 4일 기자들과 만남)고도 했다. 다분히 임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다.
금감원도 신속하다. 지난 5월 관련 사건에 대해 제보를 받아 1차 검사를 실시한데 이어 8월부터는 2차 검사에 나섰다. 우리금융저축은행, 우리금융캐피탈, 우리카드 등 계열사에 대한 검사도 시작했다. 내년으로 예정된 우리은행 등에 대한 정기검사도 앞당겨 10월부터 실시키로 했다.
우리은행은 8월 중순만 해도 “심사 소홀로 인한 여신 부실화는 금감원 보고 대상이 아니다”고 맞섰지만 금세 꼬리를 내렸다. 임 회장은 “조사 혹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저와 은행장을 포함한 임직원은 그에 맞는 조치와 절차를 겸허하게 따르겠다”(8월 28일 내부회의)고 물러섰다. 임 회장의 고향 격인 금융위원회도 별 반응이 없다. 금감원이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하기 직전에야 그 사실을 알려온 것이 언짢기는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이 원장이 모피아를 겨냥해 우리금융 부당대출건을 다루고 있다는 시각은 틀렸다. 우리은행이 1~3월 자체 감사를 통해 사실을 파악한 뒤 4월에 징계조치를 취하고도 금감원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은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아니냐는 검사의 본능이 발동했다고 보는 게 맞다.
결국 문제는 우리은행과 우리금융 내부에 있다. 최고경영자와 일부 측근들을 중심으로한 독단 경영, 옛 한일은행과 옛 상업은행 출신 간의 고질적 파벌 싸움, 현 경영진에 대한 끝없는 흠집내기, 실적보다는 인연이 작용한다는 인사 관행 등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탓이다.
손 전 회장의 처남이 ‘명예 회장’이나 ‘명예 지점장’ 등의 명함을 들고 다녔고 친인척 대출이 2020년부터 이뤄졌다면 손 전 회장 측근들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이를 제어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흔적은 없다. 현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금감원 발표대로 우리은행이 작년 10월께 관련 사실을 파악했다면 대출회수 등 신속한 조치를 취했어야 맞다. 그런데도 올 1월까지 대출이 실행되는 걸 두고만 봤다. 지난 7월 준법감시인 등의 인사를 하면서도 책임을 묻기는커녕 특정 인맥 인사들로 돌려막기를 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제보를 통해 이번 사건을 인지했다고 한다. 우리은행이 자체 조사를 끝내고도 덮으려 한 것에 분개한 내부자 제보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현 경영진을 흠집내려는 측의 제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파벌싸움이 여전하다는 의미다.
임 회장 취임 이후에도 우리금융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6월엔 180억원을 횡령한 직원이 적발되기도 했다. 임 회장은 내부통제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으나 아직은 별무소득이다. 개혁 의지에 대한 이 원장의 의문 제기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