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엠파스, 새한미디어. 한때는 위세가 대단했지만 지금은 기세가 한풀 꺾이거나 흔적을 찾기 힘든 브랜드들입니다. 휴대폰의 대명사였던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 휴대폰 사업 부문이 인수된 후 더 이상 일반 대중이 찾기 힘든 통신기기가 되었고, ‘자연어 검색’으로 돌풍을 일으킨 엠파스나 세계 최대 비디오테이프 제국을 꿈꾼 새한미디어도 브랜드의 과거 영광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브랜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길고도 처절한 생존 경주를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평균수명은 1958년 61년에서 2027년 12년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브랜드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기업은 사라져도 브랜드는 남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살충제의 대명사였던 ‘에프킬라’는 1997년 외환 위기 때 삼성제약이 한국존슨(현 SC존슨코리아)에 넘긴 브랜드입니다. 브랜드 자체 파워가 대단하다 보니 2005년부터 생산 라인을 중국으로 옮겨 수입·판매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국내 살충제 시장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해태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국내 최초 식품 회사였던 모기업 해태가 부도난 뒤 크라운제과에 병합됐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친숙한 해태의 브랜드로 국민 아이스크림 ‘부라보콘’과 ‘맛동산’ 과자를 즐기고 있으니 말이죠.
과연 브랜드의 지속가능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과거 필름 시대의 영광이 저문 뒤에도 여전히 화장품·의료·전자재료·디지털카메라·방송 시장 등에서 위세를 떨치는 후지필름, 독일을 대표하는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출발해 현재 반도체·통신·가전·의료기기 등 폭넓은 사업을 영위하며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한 지멘스, 1884년 영국의 비누 회사로 시작해 세계 최대 소비재 제조사로 발돋움한 유니레버.
제각각 속사정이 있겠지만, 성공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ESG 경영’으로 뼈를 깎는 쇄신과 변화를 주도했다는 것이겠죠. 지멘스의 경우 2008년 지속가능성 책임자를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조직을 쇄신하고, 기후변화 대책 등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 같은 기업의 피나는 노력을 소비자들은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였죠.
〈한경ESG〉는 9월호 커버 스토리로 ‘대한민국 소비자가 뽑은 2024 ESG 브랜드’를 다뤘습니다. 전국 20대 이상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ESG 인지도를 조사한 것으로, 응답자들은 ESG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높은 점수를 주며 응원했습니다. ESG를 잘하는 기업에 대해 ‘이미지가 좋아진다’고 밝힌 응답자는 79.2%, ‘해당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는 응답도 71.9%에 달했으니까요.
기업의 브랜드는 계속 진화하고 도태합니다. 생존 경주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료 주입이 필수인데, 소비자의 ‘전폭적 신뢰’보다 가성비 좋은 연료는 없을 것입니다.
글 한용섭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