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집필한 '경제학원론'이 출간 50주년을 맞았다. 1990년대부터 공동저자로 참여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29일 오전 서울 신림동 호암교수회관에서 '경제학원론' 50주년 행사를 열고 최근 출간한 12번째 개정판을 조 전 부총리에게 헌정했다.
조 전 부총리가 이 책을 처음 쓴 것은 1974년이다. 미국 뉴햄프셔 주립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던 조 전 부총리는 1967년 귀국해 모교인 서울대 상과대에서 강의했다. ‘경제학 불모지’인 한국에 케인스 이론을 처음 소개했고 20년간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 전 총리와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은 총재를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그는 "사람들이 경제학을 배우고자 하는 이유는 기계적으로 정리와 명제를 기억하자는 데 있지 않다. 우리의 사회와 세계를 알고, 전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자 함에 있다"며 '경제학원론'을 썼다. 정 전 총리는 "근대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한 분이 처음으로 쓴 책"이라며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대부분 이 책을 읽었다고 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조 전 부총리가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이동한 1988년부터 집필에 참여했다. 이보다 2년 전인 1986년에는 경제학원론의 해설서 격인 '조순 경제학원론에 따른 경제학 스터디가이드'를 펴내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선생(조 전 부총리)은 제가 너무 많이 수정해 단독 저자로 남을 수 없다고 하면서 공동 저자의 영광을 누리게 해주셨다"고 회고 했다. 이후 조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 첫 민선 서울시장 등을 역임했다.
정 전 총리가 서울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2003년엔 정 전 총리의 제자인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가 집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가 국무총리를 맡게 됐을 무렵인 2009년엔 김영식 경제학부 교수가 공동저자에 추가됐다.
이번 개정판은 김 교수가 주도적으로 집필했다. 이론을 뒷받침하는 국내외 사례와 통계자료를 최신 수치로 업데이트했다. 코로나19 충격 이후 세계 경제와 인플레이션, 저출산·고령화, 소득 불평등 심화, 인공지능(AI) 대두를 비롯한 다양한 현안도 추가했다. 김 교수는 "이론의 현실경제 설명력과 정책시사점 뿐 아니라 한계도 명확시 서술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론을 창안한 경제학자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경제학자와 아이디어' 항목도 새롭게 넣었다. 김 교수는 "아담 스미스, 존 메이나드 케인즈,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이 각각 자신들의 저술을 통해 보여준 인간과 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선생이 이들 경제학자의 사상에 대해 남긴 글을 빌려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전 부총리가 쓴 '아담 스미스의 사상과 한국의 경제사회'라는 글을 소개했다.
조 전 부총리는 이 글의 말미에서 "'도덕감정론'에서는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 '보이지 않는 손'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으로 논의된 반면, '국부론'에서는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 그러한 작용이 있는 것으로 논의되었다. '국부론'에서 스미스는 이기심이 순조롭게 공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분권적 사회제도와 공평한 법규, 독과점이 배제된 경쟁체계와 민주적 사회질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두 고전에 비추어볼 때 현대자본주의의 발전 양상에 대해 아담 스미스는 적지 않게 실망했을지로 모른다"고 썼다.
정 전 총리는 "대학시절 '경제 현안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선생(조 전 부총리)은 '항상 시장을 가봐야한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풀 때도 수요와 공급, 단기와 장기 등 기본적인 경제적 사고의 틀이 중요하다'고 답했다"며 "경제학원론의 참 원론을 강조한 이 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 전 총리는 이날 인터뷰하면서 최근 한국은행이 제안한 '지역별 비례 선발제'에 대해 "2002년 총장에 취임하자마자 냈던 아이디어"라며 "2005년 도입된 지역균형 전형은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공부 못하는 시골 애들 뽑아서 어떻게 할거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시골에서 1등이면 서울에서도 1등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며 "최근 수능 정시생보다 지역균형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의 성적이 더 낫다는 게 위안이 된다"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