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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오피스 시장과 소니(Sony)의 워크맨 [이지스의 공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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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08월 28일 14:3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오피스 시장’과 ‘워크맨’,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단어 2개다. 하지만 워크맨이 서울 오피스 시장의 암울한 미래를 설명하는 비유가 될지 모른다. 앞으로 그 이유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다른 글로벌시장과 다르다. 특이한 투자구조다”, “서울의 오피스 시장은 견고하다, 글로벌 시장과 다르다”, 필자가 부동산 업계에 들어와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다. 이번 코로나 위기에도 글로벌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평균 30~40% 전후의 하락 조정을 겪었다. 반면 서울의 최근 거래가 기준 오피스 매매가는 오히려 상승했다. 낮은 재택비율, 신규 공급 부족, 대체 투자자산의 부족 등 다른 시장 대비 서울 시장의 특성을 강조하며, “서울 오피스 시장은 다르다”라는 강한 펀더멘털이 글로벌 시장에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과연 지금 우리의 독특한 시장구조를 경쟁력으로 해석해야 할지, 위기의 조짐으로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다 떠오른 말이 과거 일본에서 회자된 ‘갈라파고스화(Galapagos syndrome)’다.

갈라파고스는 남미에서 900km 떨어진 태평양 위 해안에 있는 섬이다. 대륙에서 격리된 환경으로 다른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진화를 통해 희귀종이 많이 서식하는 섬이다. 다윈이 진화론 아이디어를 얻은 장소로도 유명하다. 일본은 높은 기술력과 상품력으로 글로벌 제조강국으로 산업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특유의 상관행이나 독자적인 기능을 고집했던 일본 기업은 해외 시장과는 다른 독특한 시장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이질성과 독자성을 생물 생태계 현상에 비유한 것이 갈라파고스화 현상으로 일본 제조업의 산업 구조를 파괴시킨 위협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단하나의 환경에서 제품 및 서비스 최적화가 현저하게 진행되면, 외부 제품과 호환성을 잃고 고립된다. 범용성과 생존력이 높은 제품 또는 기술이 외부에서 유입되면 최종적으로 도태될 위험에 빠진다. 독자적 진화가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을 땐 이미 글로벌 추세에 크게 뒤처진다. 90년대 AV, 휴대전화, TV, 자동차 등 우리가 알았던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어느 사이인가 상품 경쟁력을 잃고, 소비자에게 외면받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소니의 워크맨이다. 소니는 1946년 도쿄 니혼바시 백화점의 라디오 수리점으로 시작해 1979년 워크맨을 출시했다. 과거 집에서만 듣던 스테레오 카세트의 개념을 걸어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새로운 사용가치로 제시했다. 그야말로 혁신이다. 글로벌 시장 전반에서 소니의 워크맨은 브랜드 파워를 일으키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과거 영광에 대한 자만과 도취, 폐쇄적인 생태계의 늪에 빠졌다. 본래 소니의 기업철학이었던 ‘새로운 고객 니즈 변화와 다음의 사용가치를 발견’이라는 ‘Sony-ism’ 노력을 게을리했다. 결국 애플의 아이팟에 그 명성을 내준다. ‘소니 쇼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2003년 4월 순이익은 전년비 -40% 하락, 주가는 이틀 만에 30% 가까이 내려가면서 소니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아픈 구조조정의 시간을 겪게 된다. 소니 몰락의 이유로는 변화 타이밍의 실기, 폐쇄적 생태계의 고집, 고객의 사용가치에 대한 노력 소홀 등으로 회자되고 있다.

90년대 우리 추억 속에 상징적으로 남아있던 워크맨의 성장과 쇠퇴의 사이클에서 서울의 오피스 시장이 생각났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오피스 시장의 특이성과 강한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는 흡사 일본의 갈라파고스화와 같은 우리가 매몰된 고정관념이 아닐까? 서울의 독자적인 기업문화와 투자 구조의 특성이라는 ‘암묵적 담합’을 통해 우리는 글로벌 변화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로벌 오피스 시장의 둔화는 단순히 재택비율의 확대 탓만은 아니다. 오피스가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에 의한 업무방식의 변화에 제때 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단순히 위치가 사무실에서 집으로 바뀐 것이 아니다. 원격근무가 가능한 업무 시스템이 구축됐고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이 개선되면서 업무 공간에 대한 개념, 일하는 방식과 핵심 인력 확보에 대한 개념이 변화됐다. 글로벌 오피스는 입지, 규모 이외에 서비스 등 가치를 주는 공간이 됐다. 업무 생산성 개선을 위한 기획/설계, 로봇을 통한 인적 관리 비용 효율과 친환경 설계 및 건설을 통한 에너지 절감 등 다양한 분야에서 3세대 오피스 진화가 진행 중이다.

서울의 오피스 시장이 견고하다고 자신하지만 오피스 자산 자체의 변화와 혁신은 글로벌 선진 오피스 대비 얼마나 탄탄할까? 설계와 건설 계획에 따라 투입될 투자비가 얼마인지, 이에 따라 임대료는 어느 정도 올려야 하는지 등 기존에 레거시적 투자 방식의 계산으로는 변화하는 모델을 따라갈 수 없다. 아직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해도 당분간 괜찮다는 생각은 자칫 일본의 갈라파고스화처럼 도태될 가능성을 품는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은 더 이상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기술 혁신에 대응한 포트폴리오 확장 중이다. 부동산과 PE를 접목한 투자 방식, 부동산과 타 산업의 하이브리드형 자산의 발굴, 단일 자산(Asset)이 아닌 지역(Area) 중심의 자산 밸류 확장 등 다양한 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와 금리라는 변수가 아니더라도 부동산 생태계는 본질적으로 확장되고 변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입지와 건물의 컨디션이 자산의 가치로 연결되는 레거시형 투자 방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 됐다.

하지만 서울의 투자 구조가 바뀌기 쉽진 않을 것이다. 자산운용사의 경우 기존 문법을 벗어난 형태로 투자자와 대주를 설득해야 하는 큰 허들이 있다. 아울러 높은 담보비율(LTV)로 금리 변화에 민감한 시장구조는 코로나 3년의 세월동안 조정된 글로벌 투자 시장과는 한층 더 폐쇄적 생태계의 환경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금리가 인하되고 투자자들의 추가적인 펀딩 자금이 시장에 들어오면 자산 가격은 다시 오를 것이고 관련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땅과 자산 확보에 치중된 플레이로 쏠림현상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문법에 익숙한 투자 시장은 틀을 깰 수 있을까. 높아진 원가, 치열해진 경쟁,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의 쏠림 현상, 여기서 우리만의 단편적인 ‘숫자 플레이’로 다시 3년, 5년이란 시간이 지난다면, 어쩜 우리도 소니의 워크맨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잊힌 존재로 앞으로의 시간을 고뇌해야 할지 모른다.

AI의 기술 속도는 매년 급속히 진보하고 있다. 앞으로 3년, 5년 이후 AI가 바꿔놓을 부동산 시장의 변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 있다. 이미 온라인 채널이 오프라인 채널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AI의 성장은 보다 급속히 부동산 투자 시장에 침투되어 새로운 시장의 진화와 도태를 야기시킬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소니가 잊었던 철학을 따르는 것이다. 자산의 사용가치에 부가가치를 높일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입지와 규모, 가격처럼 1, 2세대 투자 모델이 아닌 사용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공간을 구성하고 공간에 트래픽을 높여 임대료 수입에 더해 알파, 베타의 가치를 부가할 3세대, 4세대 투자 모델을 준비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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