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27>
3년 전쯤 추석을 앞두고 ‘선물용 와인을 두어 병 구해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았다. 그가 요청한 와인은 이탈리아 슈퍼 투스칸의 대명사 격인 사시카이아(Sassicaia). 병당 가격이 40만~50만원대에 달하는 고급 와인이다.
보통 이런 경우 ‘좋은 가격’을 전제조건으로 덧붙이는데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평소 와인을 좋아하고 점잖은 성격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여러 수입업체에 문의하고 발품을 판 끝에 드디어 적당한 가격을 찾아냈다.
기쁜 마음에 이 사실을 알리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와인 구입을 부탁한 이유는 가격보다 정상적인 품질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 지인은 가짜 와인에 대한 걱정과 유통 과정 중 변질 여부가 걱정돼 전문가를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 와인은 어떻게 찾아내고 어느 정도 유통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일반인 혹은 전문가라 할지라도 와인의 진위를 판별하기는 무척 어렵다. 위조 수법이 워낙 치밀해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편하다.
가짜 와인의 유형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비싼 빈티지로 포도 생산연도를 바꾸거나 비슷한 맛을 내는 동일 지역 와인에 위조 라벨을 부착해 유통한다. 더 큰 문제는 원래 제품의 병과 라벨을 그대로 사용해 세계 와인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사기단의 가짜 와인 유통 현실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세계 최고 권위의 와인 감별 전문가 모린 다우니(Maureen Downey)는 한 인터뷰에서 “전 세계 가짜 와인 시장 규모는 30억 달러(4조원) 정도이고 거래되는 명품 와인의 20% 정도가 짝퉁”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짜 와인은 홍콩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 이는 고급 와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무조건 최고가 와인만 찾는 졸부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다우니는 “중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명품 와인의 절반 정도는 짝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 몇 해 전 가짜 사시카이아 와인을 만들어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 판매한 이탈리아 위조 조직이 적발돼 외신을 타기도 했다. 이들은 저가 시칠리아산 와인을 사용했지만 불가리아에서 들여온 라벨·병은 진짜와 거의 구분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처럼 최고급 와인은 가짜 제조업자들의 주요 표적이 돼왔다. 고가인 만큼 발각 리스크보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에게는 평생 한두 번 마셔봤거나 처음 접하는 와인이다. 고유한 맛·향에 대한 정보가 없어 완전 범죄가 가능하다는 큰 문제점이 있다.
요즘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는 해외 직구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직접 찾아가 항의할 곳도 없어 더 심각하다. 특히 홍콩·중국에서 판매한 명품은 ‘짝퉁 지뢰밭’이나 다름없다. 극도의 주의가 필요하다.
김준철 와인스쿨 원장은 “가짜 와인에 속지 않으려면 공식 인가된 수입업체나 소매점 등 정상적인 경로를 거쳐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물용 와인이라면 비용을 좀 더 지불하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말한다.
한편 다우니는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이 위조되는 10대 와인’을 선정, 소개하기도 했다. 리스트를 살펴보면 프랑스 보르도 우안의 걸작 ‘페트뤼스’가 선두를 차지했다. 이어 부르고뉴 와인의 대명사 격인 ‘로마네 콩티’와 보르도 5대 샤토 와인 등이 뒤를 이었다.
가짜 와인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진짜를 가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산 와인의 맛과 향이 이상할 경우 일단 보관했다가 전문가 도움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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