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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더 머니이스트-이윤학의 일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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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비아냥거리는 말 중 "여자들은 무엇을 시작하든 옷부터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 먼저 예쁜 수영복을, 등산을 가기 위해 멋진 등산복을, 골프를 시작하기 전엔 골프복을 산다는 겁니다. 누군가 조롱하려 한 말이지만, 사실 이런 행동은 무엇을 하기 위한 결심을 굳히는 데 꽤 좋은 전략입니다. 물론 운동이 작심삼일로 끝나면 운동복은 고스란히 당근마켓에 내다 팔아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투자가 선행돼 원래 계획한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드는 예방 전략이 됩니다. 재미가 없어졌다고 뭐든 당근에 팔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저는 인사 고과 권한을 갖는 부장이 되면서부터 직원들과 면담을 최소 1년에 한 번씩 했습니다. 그때마다 던진 첫 질문은 "당신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 30년 후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였습니다.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보는 사람은 굉장히 당황합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부분의 사람이 말합니다. 인생의 목표가 없는 게 아니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누군들 미래에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상상을 안 해보겠어요? 다만 그것을 구체적인 꿈으로, 목표로 설정해 보지 않았다는 거겠죠.

꿈(Dream)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잠을 자면서 꾸는 생리적 꿈입니다. 두 번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理想)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실현 가능성이 아주 작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꿈'은 두 번째 의미입니다. 실현하고 싶은 이상과 목표이지요. 사실 2번 꿈을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자다가 1번 꿈을 꾸기도 하지요. 그리고 2번 꿈을 진정성 있게 꾸준히 도전하면, 3번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2번 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야기할 때 특정한 지위나 물리적 상태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사장이 꿈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 등등이요. 제가 생각하는 꿈은 조금 다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입니다. 부자도 그냥 부자가 아니라 '~하는 부자', 사장도 그냥 사장이 아니라 '~하는 사장'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즉, 막연한 '명사적 꿈'이 아니라 자신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상태나 역할로 가는 '동사적 꿈'입니다. 장 칼뱅이 말한 소명 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목표를 정해 보는 거지요. 그럼 그 꿈은 훨씬 가치 있게 될 겁니다.

한 여고생이 대학 입시에서 "아랍 여성들의 문맹률을 개선해 불평등에서 해방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라는 내용의 에세이를 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의 희망 전공은 정치외교학과였고, 대학 졸업 후 원하는 직업은 외교관이었다지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꿈은 이처럼 동사로 표현될 수 있는 인생의 지향점입니다. 특정한 지위나 물리적 상태가 아닙니다. 그건 자신만의 목표, 지향점을 향해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일련의 과정일 뿐입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 십계명을 들어보셨는지요? 거창고등학교 강당에 걸려있다는 그 유명한 직업 선택 십계명입니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도저히 쉽게 할 수 없는 말들로 꽉 차 있습니다. 저도 이 십계명의 모든 글귀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중 몇 가지는 크게 공감합니다. '앞다투어 모이는 곳에 절대 가지 말라',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그리고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등입니다.
<거창고 직업 선택 십계명>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하지 말고 가라.
열 번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 직업 십계명은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길, 가고 싶어 하는 길, 인기에 영합하는 길로는 가지 말라, 혹은 '창조적 소수자가 되어라.'라는 뜻이 전체적으로 관통하고 있지요. 특히 다섯째,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는 글귀는 제가 늘 대학입시를 앞두고 전공학과를 정하지 못한 학생이나 그 부모들에게 해주는 말입니다. 지금 20세도 안 된 학생이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역량을 펼칠 나이는 40대입니다. 그러니까 학생 기준으로 20년 이후인 거지요. 지금 인기 있는 전공, 잘 나가는 학과를 선택할 게 아니라 20년 후에 잘나갈 전공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니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이 아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겁니다.

지난해 한국은행에서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일자리들을 분석했는데요. 결론은 고학력 고소득자들이 많은 전문 직종일수록 인공지능(AI) 노출 지수가 높아, AI에 의해서 일자리가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특히 데이터를 활용하면서 비반복적 분석 업무를 하는 전문 직군인 의사, 회계사, 변호사, 건축가 등이 AI 노출 지수가 높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 직종은 국가가 라이선스를 통해 특정 이익을 담보해 주는 직업들입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직종의 생존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한국의 입시생과 부모들이 그리도 갈망하는 학과와 직업들이 앞으로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니, 21세기 직업 생태계의 변화가 더욱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 직업 십계명에서 제게 가장 울림이 컸던 문구는 아홉번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였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부모나 배우자의 말을 듣지 말라니, 어느 부모나 배우자가 나를 나쁜 길로 인도할까요? 결사반대할수록 틀림없다니 무슨 이런 소리가 있나 싶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 십계명을 처음 접한 것은 우리 집 아이의 대학 입시 때 지원 학과를 정하는 것을 두고 한창 아이와 실랑이를 벌일 때였습니다. 아빠인 저는 경제나 경영을 권했고, 안정적인 삶을 바랐던 엄마는 사범대학을 권했지요. 그런데 아이는 양쪽을 모두 거부하고 본인이 끌리는 순수 학문을 하겠답니다. 아, 참 부모로서 난감할 노릇입니다. 성적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그 때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 한 분이 제 고민을 듣고 핸드폰으로 '거창고 직업 선택 십계명'을 보내주셨지요. 저는 쭉 읽어 내려가다가 아홉 번째에서 숨이 턱 하고 막혔습니다. '부모가 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아이가 이 십계명을 알 리가 없었겠지만 저는 그때 큰 충격을 받고 결심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되는 아이의 미래를 부모가 마음대로 재단하면 안 되겠구나.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네가 정해야지, 부모가 정할 수는 없다. 어차피 네 인생이고, 네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뜻대로 본인이 원하는 학과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다시 인생의 꿈, 목표로 돌아가 볼까요? 제가 부장 시절, 얼굴이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한 남직원이 있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사내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다른 직원들의 부러움을 샀지요.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었으니, 정말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노래 솜씨에 비해 업무 능력은 평범했습니다. 개인 면담 시간에 제가 물었지요.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그런데 이 친구는 서슴없이 증권회사, 그것도 우리 회사 사장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지요. 그런 직위나 직책 말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냐고. 그러니 갑자기 말이 없어졌어요.

저는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삶의 지향점이 인생의 목표다. 그 길을 열심히 가다 보면 특정 지위도 얻는 것이지, 그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요. 그리고 한 번 시간을 두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천천히 생각해 봐라, 무턱대고 증권회사 사장이 되려는 것보다 '금융시장에서 은행을 뛰어넘은 최초의 증권회사 사장'과 같이 역할과 방향성이 있어야지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부서를 옮겨 그에게 꿈이 무엇인지 다시 듣진 못했습니다만, 이후 구체적인 꿈을 세워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차근차근해나가고 있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윤학 전 BNK 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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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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