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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임이냐 교체냐 심판대 오른 은행장들…‘모범관행’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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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대대적인 인사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장을 비롯해 하나와 NH농협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도 올해 말과 내년 초에 끝나서다.

은행들은 이자 이익을 기반으로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실적만 놓고보면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그러나 지주 회장과의 역학관계, 각종 금융사고에서 비롯된 내부통제 실패 등에 따라 각 행장들의 거취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당국이 새로 정립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변수다. 그간 폐쇄적인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던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은행권 논의를 거쳐 수립한 원칙을 바탕으로 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은행들이 모범관행에 적시된 원칙을 지키며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승계 프로세스를 가동하도록 한 원칙에 따라 은행권은 내달부터 본격적인 인선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둔 은행권 수장들이 마지막 시험대에 놓였다.

①3연임 도전,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유일하게 연임 중인 CEO다. 2022년 1월 은행장에 올라 2년의 첫 임기를 마친 후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체제에서 1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받았다. 은행권은 통상 행장의 첫 임기 2년간의 성과에 따라 1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하곤 한다. 은행권의 전통적인 관행을 따를 경우 이 행장은 이번 임기가 마지막이지만 국민은행의 경우 은행장의 3연임 전례가 있다. 직전의 허인 전 행장(현 KB금융지주 부회장)이다. 허 전 행장이 3연임(2+1+1)하며 회사를 4년간 안정적으로 이끈 사례가 있는 만큼 이 행장의 3연임 가능성도 나온다.

다만 양 회장 체제 출범 후 두 번째 인사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이 행장은 양 회장과 주택은행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양 회장의 임기는 2026년 11월까지다. 남은 2년을 함께할 은행장을 선임해야 하는 양 회장이 첫 인사에 ‘조직 안정’을 택한 만큼 두 번째 인사는 ‘조직 쇄신’을 택할 수도 있단 관측이 나온다. 둘 중 어느 것에 무게를 두는지에 따라 이 행장의 거취가 달라질 수 있다.

일단 이 행장은 급한 불은 껐다. 최대 난제였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를 빠른 속도로 수습하며 리더십을 입증했다. 올해 초 ELS 손실 보상으로 순이익 감소가 불가피했지만 한 분기 만에 회복했다. 국민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중 홍콩 ELS 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은행이다.

홍콩 H지수 ELS가 이 행장 주도로 처음 판매한 상품이 아니라는 점도 참작 사유다.

경영 성적표는 양호한 편이다. 2022년에는 2조9960억원, 2023년에는 3조2615억원을 거두는 등 2년간 꾸준히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505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감소했지만 2분기 대손충당금(떼일 것에 대비해 쌓는 돈) 환입 영향으로 1분기보다 186.6% 증가한 순이익을 냈다.

하지만 이 행장은 재임 시기 리딩뱅크(은행권 순이익 1위)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연이어 발생한 배임 사고도 부담이다. 지난해 증권대행사업부 소속 직원들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수십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100억원 이상 대형 대출 배임 사고가 3건 적발됐다. 국민은행의 리딩뱅크 탈환 실패와 내부통제 실패 사고는 이 행장의 3연임 행보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②‘진옥동 파트너’ 정상혁 신한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연임 가능성이 높은 행장으로 꼽힌다. 그는 고(故) 한용구 행장의 잔여임기를 수행 중이다. 지난해 2월 갑자스럽게 신한은행 수장 자리를 이어 받았지만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단 정 행장은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체제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진 회장이 오랜 기간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했다면 정 행장은 국내 영업에 잔뼈가 굵다. 대부분의 경력을 일선 영업점에서 쌓았다. 정 행장이 변곡점을 맞이한 건 진 회장이 신한은행장이 됐을 때다. 당시 정 행장은 진 회장의 비서실장직을 역임하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이후 경영기획그룹장(CFO)을 맡으며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진 회장의 임기(2026년3월)가 1년 남은 만큼 진옥동-정상혁 체제를 유지하는 ‘조직 안정’을 선택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정 행장은 금융사고 여파에서 상대적으로 비켜서 있다. 그의 재임 기간 홍콩 H지수 ELS 손실 사태 등의 이슈가 있었으나 규모와 사회적 파급력 측면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아 리스크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성적표도 뒷받침한다. 신한은행은 올해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했다.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2조535억원으로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2조원을 넘겼다. 2분기 순이익은 1조1248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21.1% 늘었다.

다만 신한은행은 핵심 수익원인 이자 부문에서 국민은행에 뒤처진다. 신한은행은 올 상반기 이자이익 4조3798억원, 비이자이익 406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은 신한은행보다 이자 부문에서 7530억원, 비이자 부문에서 1552억원 각각 더 많은 이익을 냈다. 또 총영업이익 규모도 국민은행(5조3533억원)이 신한은행(4조7859억원)보다 5600억원 가량 더 많다.




③‘통합 상징성 크지만 실적이 변수’ 이승열 하나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의 연임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내년 3월 임기를 마치기 때문이다. 은행장은 금융지주 회장 후보 1순위인 만큼 금융그룹 지배구조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차기 행장 선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초임인 이 행장이 함 회장의 거취와도 연동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함 회장과의 역학관계가 변수지만 일단 이 행장의 연임은 높게 점쳐진다. 우선 그는 첫 외환은행 출신 하나은행장으로 통합 상징성을 갖는다. 취임 첫해인 2023년 사상 최대 순이익(3조4766억원)으로 리딩뱅크 지위를 사수하며 영업 경험이 많지 않다는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이 행장이 줄곧 본점 조직에서 근무하며 IR팀장, 경영기획부장, 경영기획그룹장, 그룹재무총괄 등을 역임했던 것.

다만 올해 다시 리딩뱅크 타이틀을 내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나은행은 올 상반기 순이익 1조750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4.8% 감소한 규모다.

이유는 있다. 함 회장이 올해 ‘성장’보다 ‘관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행장도 그룹 전략에 발을 맞춘 것이다. 하나은행은 2022년 기업금융 시장에서 자금수요가 폭발적으로 상승하자 이를 적극 취급했고 여기서 얻은 이자이익으로 리딩뱅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간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2파전 양강구도에 하나은행이 처음 참전한 셈. 올해는 2022~2023년에 비해 기업금융 영업 강도를 낮추고 있다.

④‘공정’ 키워드 조병규 우리은행장, 반복되는 금융사고가 발목

지난해 우리금융지주는 임종룡 회장의 취임을 앞두고 자회사 CEO를 전면 물갈이했다. 임기가 연말까지였던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도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이 전 행장의 용퇴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해 1년 6개월의 임기를 부여받았다. 통상 은행장의 첫 임기로 2년이 주어지는데 비해 반년이 짧았는데 승계 프로세스를 밟으면서 조 행장의 취임이 늦어진 영향이다. 조 행장은 임 회장 취임 후 가동된 ‘우리은행장 선임 프로그램’을 통해 선임된 최초의 행장이다. ‘공정한’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한일과 상업은행의 오랜 계파 갈등을 종식하려는 임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

조 행장은 짧은 임기 속에서도 인적 쇄신과 시스템 재건 등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 행장의 임기 내내 잡음이 지속됐다. 우리은행 대리급 직원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대출 신청서를 위조해 180억원 상당을 횡령했다. 최근에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들이 우리은행에서 350억원의 부당 대출을 받아간 정황이 드러나면서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올랐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은 조 행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돼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 회장도 마찬가지다. CEO가 내부통제 체계 강화를 위한 경영활동을 했느냐가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어쨌든 임 회장과 조 행장은 임기 중 두 차례나 대규모 금융사고를 방지하지 못했다.

금융당국의 스탠스도 눈여겨볼 점이다. 당국은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 대출 사태를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특히 우리은행이 ‘뚜렷한 불법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로 금감원에 부당 대출 건을 보고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앞서 우리은행은 올해 두 차례나 자체 검사를 진행했지만 1차 검사 때 ‘금융사고가’ 아닌 ‘부실여신’으로 판단한 후 금융당국에 사고 보고 없이 관련 임직원 징계로 끝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사문서 위조 등은 일반 업무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사고가 맞다는 입장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임 회장을 겨냥해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오는 10월께로 예정된 정무위원회 국정감사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횡령 사태가 잦았던 2022년 정무위 국감에는 은행권 수장이 일제히 증인으로 소환된 바 있다. 하반기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게 조 행장의 과제다.

⑤이석용 농협은행장, 성과 좋았는데 내부통제 부실 도마 위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은 내부 출신의 세대교체라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성적표도 양호하다. 농협은행은 올해 상반기 순이익 1조266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98억원(1.6%) 증가한 금액이다. 하반기에도 실적 상승이 이어지면 이 행장 2년 차에 1년 차 실적(2023년 순이익 1조7783억원)을 넘어서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농협은행은 역대 최대 순이익 실현에 도전할 수 있다. 지난해 이 행장은 189억원 차이로 역대 최대 실적 타이틀을 놓쳤다.

하지만 연이어 덮친 금융사고가 변수다. 지난 3월 110억원 규모의 배임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5월 64억원 규모의 부당 대출이 추가로 드러났다. 총 규모는 174억원에 이른다. 이 중 일부는 이 행장 시절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3월 농협중앙회장으로 취임한 강호동 회장이 내부통제와 관리책임 강화를 줄곧 얘기하고 있는 만큼 조직 쇄신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리책임 강화 방안에는 중대 사고와 관련된 계열사 대표의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역대 농협중앙회장 대부분은 취임 후 본인과 합을 맞출 수 있는 인사로 NH농협금융 회장과 농협은행장 인선에 힘을 실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3연임에 성공했던 이대훈 전 행장을 제외하면 두 차례 이상 임기를 수행한 행장은 드물다. 여기에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도 올해 말 만료된다. 이 회장 역시 각종 금융사고로 내부통제 문제가 드러나면서 연임 도전에 험로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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