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기업 인수합병(M&A)에 ‘허가권자’로 나선 듯한 모습은 우려스럽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사업 재편을 추진하는 두산그룹에 대해 “조금이라도 (증권신고서에) 부족함이 있다면 횟수 제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다. 앞으로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일일이 금융당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알짜 기업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인적분할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합병 비율을 놓고 소액주주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두산의 분할·합병안에 위법 행위가 없는데도 금융당국이 ‘시장 심판자’를 자처하며 직접 개입하는 행위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시장에는 합병에 동의하지 않는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장치가 있다. 대규모 매수청구권이 들어오면 합병은 무산된다. 최근 셀트리온이 셀트리온제약과의 합병 작업을 스스로 중단한 것도 이런 자율 장치가 작동한 결과다. 그런데도 당국이 시장 자율을 무시하고 기업 활동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다. 오히려 규제 불확실성을 키워 시장을 뒤틀리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 원장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돈 잔치’ 언급 이후 시중은행을 돌며 가계대출 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가계대출 잔액이 매달 사상 최대를 경신하며 가파르게 불어난 것은 그 후과다. 올해 들어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주주환원이 미진한 상장사를 퇴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돌발 발언으로 시장을 흔들었다. 지난 6월에는 ‘배임죄 폐지’ 주장을 강하게 내놓기도 했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에 산업계 우려가 커지자 보완 차원에서 한 바람직한 방향의 제안이긴 하지만, 금감원장 입에서 이 발언이 나오자 시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국이 시장 위에 있다고 여기는 건 ‘오만한 착각’이다. 더구나 자유시장 기치를 내건 윤석열 정부 아닌가. 금감원의 과도한 월권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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