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동월 대비 2.9% 상승했다. 상승률이 2%대로 내려온 것은 3년4개월 만이다. 2022년 6월 9.1%까지 올랐던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3%대를 유지했는데 이제 2%대에 접어들었다. 그 결과, 미국의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졌다. 7월 미국의 고용 상황이 나빠졌다는 통계까지 나오면서 시장은 다음달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다가오는 잭슨홀 경제정책 회의(22~24일)에서 나올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신호가 주목된다.
미국의 금리 변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설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6일 펴낸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8월호에서 “우리 경제는 견조한 수출·제조업 호조세에 완만한 내수 회복 조짐을 보이며 경기 회복 흐름이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내수 부진’ 탓에 2.6%에서 2.5%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등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6월 소매판매와 설비투자는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모두 감소세(-3.6%·-2.7%)다. 특히 건설투자는 최근 건설경기 부진으로 전년 동월 대비 4.6%나 줄었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보다 0.1포인트 낮아져 넉 달째 하락세를 보였다. 건설 수주 둔화 영향으로 건설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8만1000명 줄어 2013년 통계 개정 이후 11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영향 등으로 당분간 반등이 쉽지 않다.
소상공인·자영업 고용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도소매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6만4000명 줄었다. ‘나 홀로 사장님’은 1년 전보다 11만 명 감소했다. 혼자 가게를 운영하던 자영업자 상당수가 폐업했다는 뜻이다. 청년층 고용지표도 좋지 않다. 7월 청년층 고용률은 0.5%포인트 내린 46.5%로 3개월 연속 감소세다.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882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8.4%로 높은 수준이다. 가계부채도 많고 고용 사정이 악화하니 가계의 구매력 약화로 내수가 좋을 리 없다.
이런 가운데 21~22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리 동결 이유로는 절반 넘게 ‘부동산 가격’을 지목했다. 8월 금리 동결이 이뤄지면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은 10월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러나 부진한 내수와 민생을 감안할 때 부동산 가격 때문에 금리 인하를 늦춰야 할 것인지는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은행의 목적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다. 물가 안정 목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2.5%다. 그리고 금리 변동과 물가 안정 달성 간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이후 하락세를 지속해 6월 2.4%까지 내려앉았다. 7월에는 2.6%로 소폭 반등했지만, 하락 흐름은 유지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금리 변동의 시차 효과를 고려하면 금리 인하 시점이 늦어지는 감이 있다. 여기에 최근 PF 부실이 심각해지면서 한은의 목표 중 하나인 금융안정에 위험신호가 켜졌다. 부동산 가격 문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담보인정비율(LTV) 등 거시건전성 규제로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 목적의 수에 맞는 수의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 ‘틴베르헌의 법칙’이다. 금리 하나만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생을 외면하고 금리 인하에 실기하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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