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입대하는 게 좋겠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만 해도 러시아 경제는 폭삭 주저앉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서방이 초강력 대러 제재를 가했기 때문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 경제는 초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원병들이 매달 보내는 피 묻은 돈 덕분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사치품 소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17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 경제는 3.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은 평균 0.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인공지능(AI)발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은 한국의 성장률(예상치 2.5%)보다도 높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자원 입대자에게 한화로 약 3000만원을 일시불로 지급합니다.
사망 시 유족에게는 위로금 500만루블(약 7500만원), 보험금 491만루블(약 7400만원) 등 1억5000만원에 달하는 돈이 지급됩니다 .
월급은 약 200만원인데, 각종 수당을 더하면 수백만 원을 더 벌 수도 있습니다. 돌격 임무에 투입될 경우 1km 전진할 때마다 5만루블(75만원)이 지급됩니다
적군 탱크를 격파할 경우 대당 50만루블(750만원), 적군 탱크 탈취 시 대당 100만루블(1500만원), 다연장로켓포 파괴 시 30만루블(45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됩니다.
러시아의 최저 임금은 1만9242루블(약 29만원)입니다. 저소득층은 입대만으로 평생 버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가족들은 팔자를 고칠 수 있습니다.
전쟁 재원은 원유, 천연가스 등 원자재 수출에서 나옵니다. 중국, 인도, 터키 등 우호국은 물론 한국, 일본, 일부 유럽까지 여전히 러시아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남편에게 입대를 권유하는 부인이 많다고 합니다. 가장들은 가족을 위해 입대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부상만 당해도 300만루블(약 4500만원)이 나옵니다.
유동성은 부동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대도시 부동산 가격은 코로나19발 자산 버블이 있었던 2020년과 비교해도 최소 3배 이상 올랐습니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에 따르면 지난 6월 러시아 소비 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스파클링 와인 수입은 전년 대비 무려 80% 폭증했습니다.
전쟁은 역설적으로 러시아의 극심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대도시 엘리트 계층은 해외 교류가 막히면서 자산과 소득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시골 지역은 전장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큰 부를 거머쥐고 있습니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모스크바 지역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여론이 50%에 달합니다. 지방과 시골 지역에서 전쟁에 찬성하는 의견이 대다수인 것과 대조됩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