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SK하이닉스는 시장에서 ‘밑 빠진 독’으로 불렸다. 막대한 금액을 재투자해야만 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2등인 SK하이닉스가 돈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이다. 지난 10년(2014~2023년)간 SK하이닉스가 벌어들인 순이익은 50조원이지만, 곳간에 쌓은 현금은 8조원에 불과한 이유다.
하지만 이런 SK하이닉스의 보유 현금이 매년 두 배씩 불어날 것이란 전망이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증권가는 3년 뒤인 2027년 SK하이닉스의 현금이 1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도 보고 있다. 2분기 말 기준 SK하이닉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조9338억원이다.
근거는 인공지능(AI)용 핵심 메모리 반도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선점해 글로벌 시장 1위를 지킬 것이란 사실이 첫 번째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최신형 HBM(HBM3E)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D램을 여러 겹으로 쌓는 HBM은 일반 D램 대비 가격이 3~5배 비싸다. AI가속기 시장의 90%를 장악한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않으면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다.
전문가들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계를 본격적으로 리드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1위가 모든 수익을 ‘싹쓸이’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2·3위는 1등을 따라가기 위해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하고, 1등만큼 가격도 받지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질 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하더라도 SK하이닉스만큼 물량을 넣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낸드 사업부(솔리다임)도 현금 흐름에 기여하고 있다. 솔리다임은 AI데이터센터에 쓰이며 ‘제2 HBM’으로 떠오른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 용량인 60테라바이트(TB) eSSD 생산이 가능한 기업은 솔리다임이 유일하다.
SK하이닉스는 1위 지위를 바탕으로 투자 부담도 대폭 줄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 충북 청주, 미국 인디애나주에 동시에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이들 공장 초기 투자금의 상당액을 HBM 공급을 안정적으로 받기 위해 이례적으로 대금을 미리 지급한 핵심 고객사들로부터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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