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스튜디오의 브랜드가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앨런 버그먼 디즈니 엔터테인먼트 부문 공동회장은 11일(현지시간) 미국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D23’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브랜드를 계속 유지해주는 사람들이 자랑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디즈니 산하의 7개 스튜디오가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버그먼 회장은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에 이어 디즈니의 실질적인 ‘2인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2026년 임기를 마치는 아이거 CEO를 잇는 디즈니의 차기 CEO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그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마블 스튜디오·루카스필름·20세기폭스 등을 차례로 인수한 아이거 CEO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에 대해 “환상적”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7개 스튜디오가 각자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며 협업할 때 시너지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버그먼 회장은 “우리는 2~4년에 걸쳐 진행되는 스케줄을 보고 개봉작을 전략적으로 배치한다”며 “예를 들어 5~6월에는 마블, 7월에는 픽사, 11월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를 개봉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주 월요일마다 7개 스튜디오가 모여서 서로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지붕 일곱 가족’의 시너지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이날 버그먼 회장과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제니퍼 리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픽사로부터 많은 걸 배워 ‘스토리 트러스트’를 채택했다”며 고 말했다. 스토리 트러스트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 출신 역사학자, 건축가, 음악가 등으로 팀을 꾸려 자문하는 디즈니 내부 조직이다. 이어 “어려운 창작 과정에서도 협업을 서로 독려하는 디즈니의 내부 분위기에 힘입어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케빈 파이기 마블 사장은 “디즈니의 21세기폭스 인수 덕분에 수 백개의 마블 캐릭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각 스튜디오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 간 협력도 늘어나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강화하는 디즈니의 전략에 따라 스핀오프 작품을 영화가 아닌 디즈니플러스 시리즈로 제작하는 식이다. 캐슬린 케네디 루카스필름 사장은 “디즈니플러스에 처음으로 ‘만달로리안’을 공개할 때만 해도 솔직히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다”며 “이제는 스타워즈의 새로운 스토리텔링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피트 닥터 픽사 CCO는 “인사이드아웃의 주인공 라일라의 꿈을 콘셉트로 한 ‘드림 프로덕션’을 디즈니플러스에 공개한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결과물도 있다. 각각 원래 마블과 21세기폭스가 갖고 있던 지식재산권(IP)을 결합해 대성공을 거둔 ‘데드풀과 울버린’이 대표적이다. 이날 영화 흥행 집계 전문업체 ‘이그지비터 릴레이션스’은 데드풀과 울버린이 지난달 24일 개봉한 지 3주 만에 10억29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미성년자 관람불가에 해당하는 ‘R등급’ 영화로는 역대 두 번째다. 버그먼 회장은 “최근 글로벌 흥행 성적 10억달러를 돌파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마블과 21세기폭스 인수의 대표적인 성과”라고 말했다.
애너하임=송영찬 특파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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