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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투자자들은 경기 하강을 가리키는 관련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환호했다. 경기가 하강하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기준금리 인하를 단숨에 증시를 부양할 ‘만병통치약’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최근 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목전에 다가오자 투자자들은 뒤늦게 경기 침체 수준과 기준금리 인하의 힘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기준금리 인하가 반드시 호재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과거 사례를 분석한 결과 Fed가 기준금리를 크게 내리더라도 경기 침체 구간에선 ‘금리 인하 약발’이 통하지 않고 증시는 오히려 내려앉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에 이르기 전 Fed가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을 땐 지수도 상승으로 화답했다.
○경기 침체 위기 땐 ‘백약이 무효’
1995년 이후 미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은 크게 여섯 차례 있었다. 경기 침체 위기였을 땐 기준금리 인하도 증시를 부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닷컴버블이 붕괴한 2001년 1월 Fed는 기준금리를 연 6.5%에서 5.5%로 내렸다. 2003년 7월엔 연 1%까지 낮췄다. 그러나 S&P500지수는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2001년 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2년1개월여간 약 35% 하락했다. 2003년 2월은 금리를 연 1.25%로 내린 시점이었다. 지수가 오르기 시작한 것은 Fed가 푼 유동성이 돌고 경기가 다시 활력을 띠기 시작한 2003년 3월부터였다. 이후 지수는 2007년 10월까지 약 80%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7년도 비슷했다. Fed는 2007년 10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지만 증시는 급락했다. Fed는 2008년 12월까지 1년2개월간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0.25%로 급격히 낮췄지만 증시 급락세를 멈추지 못했다. S&P500지수는 약 53% 떨어졌고 2009년 2월에야 하락을 멈췄다.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2020년 3월 기준금리를 연 0.25%로 낮췄지만 증시는 급격히 하락했다. 다만 급락 기간은 짧았다. S&P500지수는 2020년 3월 4일부터 23일까지 약 29% 내렸다.
한국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닷컴버블 붕괴와 911테러 등으로 2001년 7~9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동안 코스피지수는 19.5% 하락했다. 금융위기 당시에도 그랬다. 2008년 10월~2009년 2월 한은은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이 기간 코스피지수는 약 20% 떨어졌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제 위기 국면에선 첫 금리 인하 후 주가가 오히려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대체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린 지 약 6개월 뒤부터 유동성이 충분히 돌기 시작하면서 경기에 활력이 생기자 주가가 다시 상승했다”고 말했다.
○연착륙에 성공한 그린스펀
기준금리 인하가 증시를 부양한 사례도 있다. 경기가 심각하게 둔화하기 전 Fed가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렸을 땐 대체로 증시가 활황을 보였다. ‘1995년 그린스펀 시나리오’가 대표적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은 미국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성장세도 주춤해지자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했고, 경기는 연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1995년 7월 기준금리를 내린 이후 S&P500지수는 그해 약 35% 올랐고 2년9개월간 101%가량 상승했다.1998년에도 Fed는 선제적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경기 방어에 나섰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등 안팎의 악재가 겹치면서다. 이후 S&P500지수는 1년11개월간 49% 올랐다.
2019년도 마찬가지다. 미·중 무역 분쟁이 이어지고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둔화) 우려가 커지자 Fed는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25%로 낮췄다. 이후 증시는 9개월여간 11% 상승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