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시장에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다. 유동성이 흘러들면서 채권 금리가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이전 수준으로 안착할 조짐이다. 회사채 금리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도 밑돌고 있다. 낮은 이자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자 기업들은 추석을 앞두고 회사채 발행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회사채 ‘완판’ 행진 중
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들어 최근까지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을 시행한 23개 기업 가운데 21곳이 ‘완판’한 것으로 나타났다. SK에코플랜트, 롯데리츠 등 건설·부동산 관련 기업도 일각의 우려를 뒤집고 적잖은 투자 수요를 확보했다. 한진, AJ네트웍스를 비롯한 신용등급 BBB급 비우량 기업에도 투자자가 몰렸다.사모 회사채(사모채) 시장에도 기업이 몰렸다. 이마트, 신세계건설, SK플라즈마, SK해운, SK렌터카, HD현대케미칼 등이 하반기 사모채로 자금을 확충했다. 사모채는 재무구조·실적이 훼손된 기업들이 주로 몰리는 자금 조달 통로다. 투자자 수요예측 절차를 건너뛰는 만큼 미매각에 따른 평판 훼손 우려가 작아서다.
카드·캐피털사 등의 조달 통로인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 시장도 유동성 확보에 숨통이 트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AA+등급 여전채(3년 만기 기준) 금리는 지난달 24일 연 3.392%를 기록한 뒤 줄곧 연 3.3%대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 3월 31일(연 3.323%) 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
통상 7~8월은 회사채 시장 비수기로 꼽힌다. 휴가 시즌과 기업 반기보고서 제출 기간이 겹치면서 회사채 발행량이 쪼그라든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비수기에도 시장 문을 비집고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달에만 공모·사모채 시장에서 회사채 조달에 나선 기업들의 목표 금액이 최대 3조3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기업들은 채권금리가 빠르게 하향 곡선을 그리자 조달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 분주하다. 지난 4월 연 4%대에서 움직였던 AA-등급 회사채(3년 만기 기준) 금리는 7월부터 기준금리(연 3.5%)를 밑도는 상황이다. 발행비용을 낮추고 유동성을 선제적으로 채워두겠다는 게 기업들의 구상이다.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성큼 다가섰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 같은 자금 조달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
반기보고서 제출을 마무리한 이달 말부터 다음달 추석 전까지 기업들의 조달 행보가 이어질 전망이다. 추석 연휴(9월 16~18일) 이후인 다음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그동안 회사채 시장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높아 일찌감치 ‘곳간 채우기’에 나선다는 게 기업들의 계획이다. 삼성물산, SK㈜, 한화솔루션, 에쓰오일 등 한국 간판 기업들이 채권시장에 등장한다. KB증권, 키움증권 등 증권사들은 3000억~5000억원어치 회사채를 찍는다.
기업들은 회사채를 통해 확보한 자금을 기존 채권 차환이나 차입구조 장기화를 위해 투입할 방침이다. 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물량은 20조원가량에 이른다.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운용1본부 이사는 “채권금리 인하 속도와 폭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선반영하면서 기업 자금 조달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며 “하반기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주/김익환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