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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막스 "확신의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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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07월 31일 17:3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제가 메모를 쓰게 되는 원동력은 매우 다양한 소재로부터 나올 수 있습니다. 이번 메모는 <뉴욕타임스> 7월 9일(화)자 기사에서 시작합니다. 저는 이 기사의 “그녀는 전혀 의심치 않는다(She doesn’t have any doubt)”라는 기사의 부제에 주목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 비서실장 론 클레인(Ron Klain)이 쓴 기사입니다. 주제는 바이든 대통령이 계속 재선에 도전해야 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바이든 캠프 선거대책본부장 젠 오말리 딜런(Jen O’Malley Dillon)을 가리킵니다. 기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6월 27일 토론이 있기 바로 전 며칠 동안 그녀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길 겁니다. 틀림없이.”라고 한 발언이 인용됐습니다.

저는 여기서 메모의 주제를 얻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계속할지, 아니면 중도 하차할지?혹은 그가 선거운동을 계속한다면 승리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이 의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 자격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불투명한 상황을 고려해 이번 메모를 ‘짤막하게’ 쓰겠습니다.

이 주제를 선택하다 보니 또 다른 일화가 떠오릅니다. 한 때 외교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 한 사람이 제가 소속한 그룹에 “이스라엘이 연말 이전에 이란의 핵무장 능력을 ‘제거할’ 확률이 100퍼센트”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내부 정보에 정통한 인물 같았고, 그의 말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을 했던 때가 2015년 아니면 2016년이었는데, 아직도 그가 말한 ‘연말 이전’이라는 시기가 언제 올지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분을 두둔하자면, 그 분이 그 때가 어느 연도인지를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제 메모 지식에 대한 환상 (The Illusion of Knowledge) (2022년 9월)에서도 언급했듯 거시경제 전망을 내놓는 사람이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변수 모두를 아우를 방법은 없습니다. 알려진 바가 없는 무작위적 영향 요인까지 정확하게 반영한 전망을 내놓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시경제 환경의 미래가 가진 예측불허적인 성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투자자 등의 사람들은 ‘~할 것이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어야만 한다’ ‘~할 리 없다’ ‘언제나’ ‘절대로’ 같은 용어를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정치

2016년 대선이 진행 중이던 때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확신한 바가 두 가지 있었는데, (a)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할 것이지만 (b) 혹시나 운명의 변덕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이긴다면 주식시장은 폭락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나마 확신이 가장 약한 전문가들조차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80퍼센트로 점쳤고, 이를 상회하는 수준에 그녀의 승리 확률에 대한 예상 수치들이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승리했고, 주식시장은 이후 14개월간 30% 이상 상승했습니다. 미래를 전망하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이에 대해 보인 반응은 자신의 예측모델을 수정하고 다음 번에는 더 나은 전망을 내놓을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반응은, “만약 이 사건마저도 (a)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하며 (b)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어떨지 역시 알 수 없다는 점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면 대체 무엇이 그러한 증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세간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3주 전 대선 토론 이전에도, 제가 아는 사람들 중 다가오는 선거 결과에 대해 굳은 확신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 Jen O’Malley Dillon는 토론 결과가 예기치 못한 복병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바이든의 승리에 대한 확신에 있어 본인의 입장을 누그러뜨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우리는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무작위성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때로는 세상 일이 사람들의 예상대로 흘러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본인이 알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떤 때에는 일이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기도 하고, 그러면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나지만 않았더라면 자신의 생각이 맞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 경우 모두,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확률?그리하여 예측에 오류가 발생할 확률?은 존재했던 것입니다. 후자의 사례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 현실화된 것이고, 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되지 않습니다.


매크로 경제

2021년, 미 연준은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인플레이션이 그저 ‘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되리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으며, 이후 이 표현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으로, 저절로 바로잡힐 가능성이 큰 상태를 의미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더라면, 연준의 생각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a) 소비지출을 급증시킨 코로나19 지원금이 소진되고 (b) 글로벌 공급망이 정상 궤도로 돌아온 뒤, 3~4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인플레이션이 저절로 후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기 둔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유발 심리가 그 3~4년의 기간 동안 지속되어 보다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해지는 리스크를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준의 견해는 2021년 중에 옳았던 것으로 입증되지 않았고, 더 이상의 기다림을 계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연준은 역사상 가장 급격한 축에 속하는 금리인상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2년 중반에, 연준의 금리인상이 경기 후퇴를 촉발하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급격한 금리인상이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중앙은행의 강력한 긴축은 거의 항상 ‘연착륙’보다는 경기 수축을 일으킨 것이 역사적으로 분명히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경기 후퇴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022년 후반에 시장 관찰자들의 컨센서스는 (a) 인플레이션이 완화 중이고, 덕분에 연준이 금리인하를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b) 금리인하로 인해 경기 후퇴를 피하거나 경기 수축이 약하고 짧게 지나갈 수 있게 되리라는 견해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이러한 낙관주의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2022년 말 주식시장 랠리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주가 상승의 밑받침이 되었던, 기대했던 2023년의 금리인하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12월, 연준 위원들의 견해를 담은 ‘점도표’가 2024년 중 3차례 금리인하를 지지하게 되자, 시장을 견인하는 낙관주의자들은 이를 배가시켜 6차례 인하까지도 계산에 넣었습니다. 인플레이션의 경직성으로 인해 지금껏 어떠한 금리인하도 배제된 상태로 2024년 한 해도 반 이상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컨센서스는 9월에 첫 금리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쪽으로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주식시장은 계속해서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낙관주의자들은 아마도 “우리 말이 맞았어. 저 수익을 보라고!”라는 말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금리인하에 대해서는 그들의 생각이 그야말로 틀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상황은 그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은 시장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또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코노미스트인 (이렇게 말하면 모순어법이 될까요?) Brean Capital의 Conrad DeQuadros가 이코노미스트들의 결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메모에 어울리는 흥미로운 토픽을 제시해준 것이 있습니다.

나는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의 불안 지수(다음 분기 실질 GDP 감소 확률)를 경기 후퇴가 끝났다는 지표로 사용한다. 설문에 참여한 이코노미스트 중 50% 이상이 다음 분기 실질 GDP 감소를 예상할 때쯤이면, 경기 후퇴는 끝나 있거나 종착점에 다가가 있는 것이다. (강조 표시 추가)

다시 말해, 확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실은 이코노미스트들이 본인이 가진 확신 중 그 어느 것도 표명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뿐입니다.

시장

2022년 10월, 연준이 향후 20개월간 금리를 인하하지 않으리라는 올바른 예측을 해낸 보기 드문 사람이 있다면 그가 절대적으로 옳았던 것이며 . . . 만일 그러한 예측 때문에 그가 주식시장에서 발을 뺐다면 S&P 500 지수 기준으로 약 50%에 달하는 수익을 놓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금리인하에 대한 낙관주의자는 금리에 관해서는 절대적으로 틀렸지만 지금 훨씬 더 부유해져 있을 것입니다. 네, 이처럼 시장의 행동에 대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시장 전문가들의 오류 사례를 나열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는 않겠습니다.

그보다는, ‘왜’ 그토록 많은 시장 예측이 실패하고 마는지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합니다. 경제와 기업의 성과는 이들을 주관하는 힘이 다소 . . . 말하자면 . . . 기계적이라는 점에서 예측가능성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고 “만약 A라면 B”라는 말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예측이 옳은 것이 될 가능성도 어느 정도 있지만, 이는 추세가 꺾이지 않은 채로 지속되어 예측이 맞아떨어질 때에나 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경제나 기업보다 더 큰 변동성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시장 참여자들의 마음이나 감정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 예측불가능성 때문입니다. Conrad DeQuadros에게서 좀 더 도움을 받아서, 다음과 같이 시장이 보이는 상대적으로 더 큰 변동성을 제시해보겠습니다.

40년간 연간 증감률 (백분율) 표준편차

GDP 1.8%
기업 수익 9.4
S&P 500 주가 13.1

주가가 그 근간이 되는 경제나 기업에 비해 훨씬 더 큰 등락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시장의 행동은 왜 이렇게 예측하기 힘들고 종종 경제적 사건이나 기업 펀더멘털과 괴리된 듯 보일까요? 금융‘학’?경제 및 재무?에서는 각 시장 참여자가 호모 에코노미쿠스, 즉 자신의 금전적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짜인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가정을 합니다. 하지만 심리나 감정의 결정적인 역할이 때로 이러한 가정을 잘못된 착각으로 만들곤 합니다. 투자심리의 변동이 크다 보니, 펀더멘털의 단기적 영향을 압도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시장에 대한 예측이 옳은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비교적 드물고, “옳은 이유로 옳은 예측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어집니다.
* * *

오늘날, 전문가들은 다가오는 대선에 대해 각종 예측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내놓는 결론 중 상당수는 논리정연하고 심지어 설득력도 있어 보입니다. 바이든이 중도 포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포기를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또는 경선을 계속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분명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듣고 읽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적 능력, 학력, 데이터 자료, 분석력이 옳은 전망을 내놓는 데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평론가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질들을 갖추고 있지만, 분명 이들 모두의 말이 옳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난 수년 간, 저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지혜로운 말을 자주 인용해왔습니다. “예측을 하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 모르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한 사람도 이분입니다. 저는 이 인용문을 항시 사용하곤 합니다. 제가 즐겨 인용하는 갤브레이스의 또 다른 명언은 그의 저서 <금융 도취의 짧은 역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투기적 도취와 예정된 폭락”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우리 시대, 혹은 과거 시대에도 거의 언급된 바가 없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금융에 관한 기억이 극도로 짧은 기간에 사라진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요인도 종종 언급하곤 합니다.

하지만 갤브레이스가 말한 두 번째 요인, 즉 “돈과 지적 능력의 그럴듯한 연관성”에 관해서는 글을 쓴 기억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부자가 되면,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그들이 똑똑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투자자들이 성공을 하면, 그들의 명석함이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흔히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공한 투자자들은 종종 자신의 지적 능력이 우수하다고 믿는 나머지 투자와 관련 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성공은 어떤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 운 좋은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거나 유리한 환경에서 나온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적일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투자 이외의 주제에 관해서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의견에 후한 평가를 내리고, 그런 의견들이 종종 일반 대중에게 높은 인정을 받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그럴듯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투자자들 중 일부가 선거와 관련된 이슈 전반에 관해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확신을 표명하는 사람들에 관한 여러 가지 격언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주 틀리면서도 절대 의심은 하지 않는” 사람들을 주위에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확실치는 않지만) 마크 트웨인이 한 말로 알려진, 제가 좋아하는 명언 하나가 더 생각나는데 바로 “당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당신이 몰랐던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2020년 중반, 팬데믹이 다소 이해할 만한 현상이 된 것 같던 시기에, 저는 3, 4월 중 매주 한 편씩 쓰던 메모 작성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5월에는 불확실성 (Uncertainty), 그리고 불확실성 II (Uncertainty II) 라는 제목의 코로나와 무관한 메모 두 편을 쓸 기회가 생겨, 지면의 상당 부분을 지적인 겸손이라는 주제에 할애했습니다. 이 메모들은 제가 좋아하는 주제 중 하나에 관한 것이었지만, 별다른 독자들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이라는 메모 내용을 짧게 인용하여 여러분께 이를 반추해볼 이유를 드려보고자 합니다.

아래 글은 지적 겸손이라는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한 신문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저자들이 정의한 대로, 지적 겸손이란 지적 오만 또는 자만심의 반대말이다. 흔히 하는 말로, 이것은 열린 생각과 흡사한 것이다.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들도 강한 믿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자신의 취약함을 인지하여 크고 작은 문제에 있어 자신이 틀렸다는 판명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 (Alison Jones, Duke Today, 2017년 3월 17일)

. . . 간단히 말해서, 지적 겸손이란 “확실치 않다”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다” 혹은 심지어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이 투자자들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 . .

“나도 잘 모르지만. . .” 또는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를 큰 곤경에 빠뜨린 법이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불확실성을 인정한다면, 투자를 하기 전에 조사를 하고 결론을 재차 확인하고 신중하게 진행시킬 것입니다. 한창 좋은 시절이라면 이로 인해 최적이 아닌 차선에 그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순식간에 망하거나 실패할 가능성은 적어집니다. 반면, 확신에 찬 사람들은 이런 태도 없이도 지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확신하던 생각이 틀리는 경우 마크 트웨인의 격언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 결과는 대참사가 될 수 있습니다. . . .

. . . 아마도 250년 전 볼테르의 말이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심리적 변동, 비합리성, 무작위성 등의 영향을 받는 분야에서 확신이 설 자리는 그야말로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그러한 분야에 속하며, 투자 또한 그러합니다. 이 분야에서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믿을 만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그러한 예측을 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확신을 멀리함으로써 문제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디 그렇게 하시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첨언: 작년 여름에는 테니스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를 관전하다가 패자를 줄일 것인가, 아니면 승자를 늘릴 것인가? (Fewer Losers, or More Winners?) 라는 메모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때처럼, 지난 토요일 윔블던 여자 결승전도 이번 메모의 일부를 장식할 소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바보라 크레이치코바가 자스민 파올리니를 꺾고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경기였습니다. 토너먼트가 있기 전, 도박사들은 크레이치코바의 우승 확률을 125대 1로 점쳤습니다. 즉 그녀가 이길 리 없다는 확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잠재력을 의심한 도박사들의 생각이 옳았을 수도 있지만, 예측을 함에 있어 그렇게까지 굳은 확신을 갖지는 말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예측불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생명을 위협했던, 보다 더 중대하고 강력한 결과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었던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심각한 부상을 면한 지금도, 이것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재로서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높인 것으로 보이지만) 또는 시장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저의 주장, 즉 예측을 한다는 것은 대체로 패자들이 하는 게임이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사례입니다.

2024년 7월 17일

출처 : 오크트리 웹사이트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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