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논현동에 있는 영풍사옥 1층 로비를 방문하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 개의 흉상이 나란히 서 있었다. 공동 창업주인 장병희·최기호 선대회장 흉상이다. 이 중 최 창업주의 흉상이 사라졌다.
고려아연은 지난 29일 그동안 세 들어 살던 영풍빌딩을 나와 서울 그랑서울 종로사옥에서 새 출발하면서 최 창업주의 흉상도 가져갔다. 흉상은 종로사옥 19층 임원회의실 옆에 놓였다. 3월 고려아연이 영풍과 공동 경영·인적 교류 등 모든 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지 4개월 만에 영풍의 장씨와 고려아연의 최씨 간 75년 협업의 상징도 이별하게 됐다.
먼저 들어선 건 1982년 최 창업주의 흉상이었다. 장 창업주는 최 창업주가 별세한 이후 그를 기리기 위해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생산한 아연과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 만든 순동을 혼합해 흉상을 제작했다. 기념관을 세우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장 창업주는 “최 창업주와 나의 평생 신념 중 하나가 ‘자랑하지 말자’인 만큼 흉상 하나면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장 창업주가 별세하자 최 창업주 옆에 똑같은 재료로 흉상을 하나 더 세웠다.
두 집안은 최 창업주와 장 창업주의 기일이 있는 4월과 12월이 되면 흰 꽃을 흉상 앞에 놓는 소박한 추모식을 20년 넘게 열었다. 흉상이 따로 떨어진 만큼 공동 추모식도 사실상 끝났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현재 비철금속을 공동 판매해온 서린상사의 경영권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영풍의 황산 물량을 처리해온 고려아연이 계약 종료를 선언한 것과 관련해 공정거래법 위반 관련 소송도 하고 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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