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원전’ 소형모듈원자로(SMR) 가운데 비경수형 SMR 상용화를 위한 국제 협력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비경수형 SMR은 냉각재로 물을 쓰지 않는 4세대 미니 원전(Gen-4)을 말한다. 경수형 대형 원전에만 집중해 온 한국 입장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28일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캐나다원자력안전위원회(CNSC), 영국 원자력규제청(ONR)은 비경수형 상용 SMR 안전기준을 함께 정립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미국 X-에너지가 개발 중인 고온가스로(HTGR) ‘Xe-100’과 캐나다 테레스트리얼에너지가 개발하고 있는 용융염원자로(MSR) ‘IMSR’이 대상이다. 비경수형 SMR은 HTGR, MSR 외에도 소듐고속냉각로(SFR), 납고속냉각로(LFR) 등이 있다.
비경수형 SMR은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인류의 필요 전력량이 급증하는 가운데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거론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승인을 받고 세계 각국이 개발 중인 SMR 80여 종 가운데 70% 이상이 비경수형인 것도 이 때문이다. 비경수형 SMR은 발전 외에도 청정수소 생산,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선박·우주선 엔진 등 쓰임새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HTGR의 대표 주자인 Xe-100 1기의 전기 출력은 80㎿(메가와트). 대형 트럭으로 이송할 수 있는 사이즈다. 모듈 원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4기를 한 묶음으로 설치해 작은 도시 하나가 쓸 수 있는 320㎿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한번 가동하면 60년간 핵연료 교체 없이 쓸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이 원전의 핵연료는 독특하다. 당구공과 모양, 크기가 같다. 우라늄을 안에 넣고 세라믹으로 겹겹이 둘렀다. 해태제과의 장수 과자 ‘홈런볼’과 같은 코어-셸 구조다. 이런 핵연료를 22만여 개 집어넣는다. 이들이 핵분열할 때 헬륨 가스가 750도까지 가열된다. 이 가스가 2차적으로 565도의 증기를 발생시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300도가량의 증기를 발생시키는 상용 대형 원전보다 증기 온도가 두 배 가까이 높다. 부피 대비 출력이 높다는 얘기다. NRC 등은 Xe-100 에 들어가는 핵연료의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원전 건설 지침을 제시하기로 했다.
MSR 진영에선 테레스트리얼에너지의 IMSR이 주목받고 있다. 우라늄과 소금이 어우러진 ‘소금 용암’ 용융염을 핵연료로 쓰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중대사고 위험이 감지되면 용융염이 저절로 굳어 사고 가능성이 이론상 제로다.
NRC 등은 GE 버노바-히타치가 개발 중인 경수형 SMR ‘BWRX-300’의 안전 검증도 하고 있다. 세계 SMR 중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BWRX-300은 2029년께 캐나다 온타리오주 달링턴에 완공될 전망이다. 수명이 60년이지만 비경수형 SMR과는 달리 핵연료를 1~2년마다 교체해야 한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때문에 SMR 개발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지난 11일 대전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서 ‘SMR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혁신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엔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등 주요 건설사와 두산에너빌리티, 우리기술, 우진, 삼홍기계 등 원전 설비 제조업체들이 참여했다.
SMR 개발 스타트업 비즈의 박윤원 대표는 “발전용과 비(非)발전용, 해양용 등 SMR 사용처에 따라 유연하고 선택적인 인허가 트랙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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