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현장이었던 일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전망이다.
26일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려운 과정 끝에 가까스로 한일간 합의가 막판에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내일(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에서 한일 간 투표 대결 없이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있다. 에도시대(16~19세기)에 금광으로 유명했고, 1940년대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시설로 활용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의 강제노역이 이뤄졌다. 2000명가량의 조선인이 이곳에 끌려와 가혹한 환경에서 노역에 동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2018년부터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왔다. 일본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서 유산 시기를 에도시대로 한정해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꼼수'를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우리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맞섰다.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유네스코 WHC 회의에서 결정된다. 이 회의는 지난 21일부터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고 있는데, 사도광산 등재 안건은 27일 오후께 논의될 전망이다. 등재 결정은 한국을 포함한 WHC 21개 회원국의 컨센서스(만장일치)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당사자 격인 한국 정부의 동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앞서 지난달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사도광산 등재 여부에 대해 '보류' 권고를 내렸다. 이코모스는 사도광산의 상업적 채굴 재개를 금지할 것을 약속하고, 일부 유산의 완충지역을 확장하라는 '핵심 권고' 외에 '전체 역사를 현장 수준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전시 전략을 책정해 시설·설비 등을 갖출 것'을 주문하는 '추가 권고'를 제시했다.
한일 양국은 줄다리기 끝에 유산 등재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등재에 동의한 이유는 두가지"라며 "첫째, 일본이 '전체 역사(whole history)'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했고, 둘째,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이미 취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 정부가 우리 측의 요구를 정말 성실히 이행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15년 일본은 강제징용 현장인 군함도(하시마 탄광)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에는 군함도 때와는 달리 일본의 이행 약속만 받은 것이 아니라 이행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합의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일본 아사히신문은 사도광산 관련 한일 정부가 조선인 노동자 역사를 현지에서 전시하는 데 합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