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재산 공개가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다. 차관급 이상 모든 공직자가 자진해서 재산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때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위 법관만 103명인 사법부였다. 입법부, 행정부가 모두 재산 공개를 하는 마당에 사법부만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산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법관 중 한 명이라도 투기 혐의자가 나오면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과 함께 재판의 권위까지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당장 첫 재산 공개 후 김덕주 대법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변호사 시절 본인과 자식 명의로 투기지역인 용인 땅을 매입한 것에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절대농지를 산 지방법원장 한 사람도 뒤를 이었다. 과도한 ‘재테크’로 법복을 벗은 첫 사례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후보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기기묘묘한 재테크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엔 한 대법관 후보자가 20억원 가까운 재산을 보유하고도 4000만원이 넘는 무이자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자금 대출 재테크’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법관의 재테크 대상은 전통적으로 예금, 부동산 자산이었다가 요즘은 주식으로 재산을 불린 주(株)테크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0억원 가까운 처가가 운영하는 회사의 주식을 재산 공개 때 누락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아들 부부를 15개월간 공관에 살게 해 ‘관사 재테크’를 도왔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근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는 비상장 주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후보자의 20대 딸이 아버지 돈으로 주식을 사고 다시 아버지에게 되팔아 63배의 차익을 거뒀다. 4억원 가까운 돈을 힘 안 들이고 번 것이다. 양도세, 증여세도 모두 아버지가 대신 내줬다. “법을 준수했고 세금도 성실히 납부했다”는 게 이 후보자의 해명이지만, 우리 사회 지도층의 너무 당연한 듯한 ‘부모 찬스’에 보통 청년들의 박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범죄에 추상같아야 할 법관들이 자신들의 편법 재테크와 부의 대물림엔 한없이 관대하지 않은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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