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메카가 되려면 전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싸고 안정적인 공급으로 한국 제조업을 반석에 올린 ‘일등공신’이었던 전기가 이제는 비싼 요금과 수급 불안으로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22일 ‘국가 첨단전략 산업 특화단지 전력수급 애로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첨단 산업을 키우려면 전력 수급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디스플레이(85%), 반도체(83%)의 전력 의존도는 광업(62%), 철강·비철금속(44%), 석유화학(14%)보다 크게 높았다. 전력 의존도는 해당 산업이 쓰는 총 에너지 사용량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비중이 높을수록 전기를 주로 쓴다는 의미다.
국가 경제에서 첨단 산업 매출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전력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송·변전망 준공이 예정된 시기보다 평균 41개월 지연됐다”며 “전력 인프라 없이는 첨단 산업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기는 저렴하고 질 좋은 철강재와 함께 한국 제조업 신화를 낳은 밑바탕이었다. 중화학 공업을 육성한 1970년대 산업용 전기료 판매단가는 ㎾h당 6~27원 사이에 불과했다. 1982년엔 ㎾h당 59원으로 올랐지만, 이후엔 떨어지고 오르길 반복하며 2005년까지 60원을 유지했다. 1980년대엔 화력 및 원자력발전소를 잇따라 들여놓은 덕분에 전기 수요가 급증해도 전기료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특히 기업 경쟁력을 위해 산업용 요금 인상은 최대한 묶었다. 전기를 많이 쓰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배터리산업에 국내 기업들이 도전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료가 최근 3년간 60% 넘게 오르면서 “전기는 이제 국내 산업의 ‘성장 촉진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산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에서 기업 하는 메리트가 하나 더 사라진 셈”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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