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년 출판업계에서 독자의 큰 사랑을 받은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이 출판된 6년 전만 해도 1990년대생은 사회초년생이었지만 이제 이들도 직장에서 2000년대생을 후배로 둔 선배가 됐다. 한때 마케팅계 ‘큰손’으로 팝업스토어를 유행시키고 ‘무지출 챌린지’를 주도한 이들은 어느덧 30대에 접어들며 2000년대생에게 마케팅의 ‘왕좌’를 넘겨줬다. 한국의 평균 초혼 연령이 남자 33.4세, 여자 31.1세라는 통계를 고려할 때 1990년대생은 어느새 결혼과 육아라는 새로운 생애주기에 들어서고 있다. 주택시장에서 이 세대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1990년대생의 주택시장 참여가 확대됐다는 증거는 ‘연령대별 주택매매 거래량’에서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 기준 30대의 주택매매 비중은 지난 2분기(4~5월) 기준 27.7%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28.0%)를 제외하면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9년 30대 거래 비중이 20%에 불과하던 것에 비해 증가 폭이 상당하다. 물론 전국 기준으로는 이 수치가 지난해 1분기부터 20%대 초반에 정체돼 있지만, 서울이라는 선행지표가 움직인 데 따른 의미는 크다.
30대 주택 구입자 비중 증가는 ‘생애 최초 구입 비중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서 전체 부동산 거래 중 생애 최초 구입자(집합건물 기준) 거래 비중을 살펴보면 2022년 3분기 33.6%에서 올해 2분기(4~5월) 44.4%로 10%포인트 넘게 늘었다. 대상을 ‘수도권 20·30대 생애 최초 구입자’로 한정해도 이들이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8.4%에서 25.1%로 크게 증가했다.
이렇게 1990년대생으로 대표되는 30대의 주택 구입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상적인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할 때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감소해 거래량도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통념과 달리 주택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확대(2023년 1월 75%→2024년 4월 80%, 썸트렌드 SNS 분석)되는데도 1990년대생 주택 거래는 늘어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싼 가격에도 구매자가 증가하는 원인은 집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와 이에 따른 ‘불안 심리’에 있다. 1990년대생은 직접적인 자산가격 하락을 겪지 못했다. 부동산, 미국 주식, 비트코인 등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자산은 일부 조정 시기가 있었지만 결국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더 크게 상승하는 우상향 추세를 보였다. 그만큼 자산시장에 빠르게 진입할수록 유리하고, 시장 진입 시점을 놓치면 나중에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근저에 깔려 있다.
1990년대생은 면봉 하나를 사도 아무거나 안 산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채널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하고, 신중한 비교·분석을 통해 최선의 구매 결정으로 연결하려는 방식이 이 세대의 특징이다. 이런 1990년대생이 주름잡는 주택시장에서는 ‘묻지마 투자’와 ‘이유 없는 상승’이 발생하기 어려워 보인다. 주택 형태에서는 특별한 강점을 갖춘 주택보다 치명적 약점이 없는 팔방미인형 주택이 더 매력적인 자산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전세시장에서 연립·다세대주택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현상도 이런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구절처럼 이제는 1990년대생 고객의 시선에서 시장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윤수민 NH농협은행 AII100자문센터 부동산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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