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 차량을 구입한 김모씨가 가장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다. 실제 도로에 가야 할 방향을 겹쳐 보여주는 방식으로 ‘길치’인 그의 스트레스를 상당히 덜어준다. “내비게이션에서 주변 관광지나 맛집을 소개하면 한번 가 볼까 싶어진다”고 그는 말했다.
위치정보시스템(GPS)을 이용한 내비게이션에서 시작된 모빌리티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일상에 깊숙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이용자를 더 빠르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수준을 넘어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까지 결정해주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어디 갈까, 뭐 할까…알고리즘이 ‘점지’
5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국내 점유율 1위 내비게이션 사업자는 티맵모빌리티(월간활성사용자 약 1500만 명)다. 내비게이션은 무료지만, 다른 곳에서 돈을 번다. 센서를 통해 ‘안전운전 점수’를 매기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보험 할인특약 등으로 연계하는 이 사업은 매년 80%씩 고속 성장하고 있다.티맵모빌리티가 지향하는 건 ‘서비스형 모빌리티(MaaS·Mobility as a Service)’ 기업이다. 대리운전, 주차,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시스템(IVI), 전기차 충전, 렌터카 등의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총망라해 제공하는 개념이다.
내비게이션은 이미 다양한 신사업을 만들었다. 택시·대리운전 호출 플랫폼과 배달앱, 공유 킥보드·자전거의 등장은 내비게이션에서 시작된 알고리즘 덕분에 가능해졌다. 아마존의 드론 배송도 마찬가지다.
상권도 뒤바꿨다. 외식사업가 백종원과 가수 성시경이 소개한 ‘지역 맛집’에는 그다음 날이면 긴 줄이 생긴다. 주소만 안다면 어디든 단번에 찾아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푸드테크 스타트업 식신은 사용자 리뷰를 통해 엄선된 전국 7000여 개 ‘별맛집’을 내비게이션으로 알려주고 있다. 반면 교묘하게 섞인 광고나 잘못된 정보 탓에 기대에 못 미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AI 결합해 자율주행 진화
내비게이션으로 시작된 알고리즘은 판단 기능과 조작 기능이 결합되면서 자율주행 알고리즘으로 진화하고 있다.세계 각국과 완성차 업체, 거대 IT 공룡에 이르기까지 인간 개입이 필요없는 레벨4의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데 한창이다. 구글 산하 웨이모가 2017년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에서 자율주행 실험을 시작한 이후 일본의 RoAD to L4, 중국 바이두 아폴로 프로젝트 등 각국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자율주행 기술을 가진 계열사 모셔널에 1조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시도 지난해 말 자율주행 버스 시범운행을 시작한 데 이어 오는 8월 강남 지역에서 자율주행 택시를 선보이기로 했다. 유인 드론을 뜻하는 ‘에어택시’도 수년 내 현실화할 예정이다.
다만 안전을 중시하는 모빌리티업계는 미래 세계에 대한 화려한 상상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 AI업계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일반인공지능(AGI)이 수년 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흔한 데 비해 모빌리티업계에선 “‘진짜’ 자율주행은 2030년에도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사람이나 물건이 대규모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넘어서야 할 물리적·심리적 병목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유인 자율주행을 위한 기술적 병목으로는 급변하는 외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를 실시간으로 빠르게 처리해 대응하는 능력이 꼽힌다. 모호한 상황에서도 인간처럼 신속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소프트웨어와 통신망 등이 두루 갖춰져야 한다. 물리적인 움직임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로보틱스 기술도 관건이다.
통신 도로 에너지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술의 가격(경제성)’도 중요한 요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개당 5000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라이다 대신 저렴한 카메라와 레이더를 이용해 낮은 수준의 자율주행(오토파일럿)을 구현한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가격이 낮아야 ‘충분히 많은 수의 이용자’라는 변화의 전제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김대훈/이상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