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본시장 선진화를 통한 '밸류업' 방안을 포함하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내놨다. 내년부터 주주환원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감면해주고, 해당 기업에 투자한 이에게는 소득세를 깎아줄 계획이다.
그간 국내 기업들이 주가 부양에 소극적인 원인 중 하나로 꼽힌 최대주주의 상속세 할증평가도 폐지한다. 하지만 이같은 대책이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 해외 증시로 옮겨가는 개인투자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을 줄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게 기업과 증권가의 평가다.
기업이 주주환원 늘리면 기업·투자자에 세액공제
기획재정부는 3일 자본시장 선진화 대책을 비롯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 가치를 높여 국민들에게 자산 형성 기회를 제공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자본시장 관련 대책으로는 기업과 투자자에 대한 세액공제 지원 확대가 골자다. 정부는 기업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을 늘린 경우 기업과 해당 기업 투자자에 세금을 공제해줄 방침이다.
주주 환원액을 직전 3개년 평균치보다 5% 이상 늘리면 초과분의 5%만큼 기업의 법인세를 세액공제해주는 식이다. 투자자에겐 배당소득 증가분에 대해 2000만원 이하의 원천징수 세율을 14%에서 9%로 낮춰 적용한다. 200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과표 구간에 따라 종합과세하거나, 25% 단일세율로 분리과세하는 방안 중 본인에게 유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다.
현행은 배당과 이자 등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한 경우 초과분에 대해선 최대 45%(지방세 포함시 최대 49.5%)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대기업 최대주주가 물려받는 주식가치에 20%를 할증해 상속가액을 산정하는 최대주주 할증 과세 제도는 폐지하기로 했다. 그간 이 제도는 국내 상장사들이 주가 부양에 소극적인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기업의 주가가 높을 수록 대주주의 상속세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서다.
"법인세 5억원 빼준다고 배당 늘리겠나"
다만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세액 공제 혜택은 기업이 배당·자사주소각 등을 예년보다 늘린 만큼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주주환원 증가 금액에 한정해 법인세를 5%만큼 공제해 주는 식이다. 개인투자자도 기업이 주주환원을 확대한 만큼에 대해서만 세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내년에 C기업이 지난 3년간과 같은 수준으로 배당을 할 경우 투자자 D씨가 받는 배당금에 대해선 기존 세제가 적용되는 식이다.
기업들은 이같은 인센티브가 배당 정책 방향을 바꾸기엔 충분치 않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재무담당 임원은 "(인센티브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수준"이라며 "우리 회사의 예년 주주환원 규모, 영업이익, 법인세 등을 따져봤을 때 세액 공제분이 크지 않다 보니 배당을 확 늘리는 등 배당정책 방향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B기업의 재무담당자도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얼마나 유효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적자를 봐 현금흐름이 좋지 않은 기업은 애초에 법인세를 내지 못할 테니 별다른 인센티브가 되지 않을 것이고, 흑자기업이라면 주주환원 증가분의 5% 수준으로는 인센티브 체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애초에 예년 대비 배당을 100억원 늘릴 여력이 있는 회사라면 과연 법인세 5억원을 아끼기 위해 배당정책을 확대할까 싶다"라며 "다만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이라면 세액공제 등을 고려해 겸사겸사 배당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대형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그간 기업 대주주는 배당에 따르는 세금 부담이 약 50%에 달해 배당 효과가 희석된다는 이유로 배당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제도가 도입되면 의사결정을 하는 오너 입장에선 법인에 대한 혜택보다는 배당으로 오너 개인이 투자자로서 받는 혜택을 훨씬 더 크게 느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배당금 전체가 아니라 '증가분'에 대해서만 주는 세금혜택은 상대적으로 효과가 높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이미 주주친화적으로 배당을 해온 기업의 경우엔 과거보다 배당금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아 세제 혜택을 받는 배당금 비율 자체가 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금융지주 등 1~3%대 상승…배당주 이외엔 '시큰둥'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이번 발표로 배당주들이 단기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통적 고배당업종인 은행·증권사를 비롯해 배당수익률이 높은 지주사, 최근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대형사 등이 거론된다. 이날 증시에선 메리츠금융지주(3.79%), 신한지주 (3.23%), 하나금융지주(2.70%), 한국금융지주(2.33%), KB금융(1.44%), BNK금융지주(1.17%) 등이 각각 1~3%대 상승마감했다. 미래에셋증권(3.21%), 키움증권(3.02%), 삼성증권(2.74%) 등도 전일대비 주가가 올랐다. 지주사 중엔 두산(10.02%)의 상승폭이 컸다. 포스코홀딩스는 1.37%, SK(주)는 0.20% 상승에 그쳤다.
한 증권사 운용역은 "국내 증시 전반에서 유의미한 수준으로 배당을 주는 회사도 많지 않다보니 배당주에 대해선 투자 유인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뚜렷한 인센티브라고 보긴 어려운 만큼 증시에서의 효과는 단기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나온 정도의 지원책으로 배당을 늘릴 만한 여력이 되는 기업은 은행이나 현금보유량이 많은 기업일 것"이라며 "시장 수혜가 전반적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금투세…정책 실효성 보장 있어야"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이날 발표된 정책이 제때 실현될지가 관건이라는 반응이다. 정부는 앞서 발표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납입과 비과세 한도 확대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두 사안 모두 올해 초부터 추진 계획이 나왔지만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는 채다. 기업의 주주환원 확대에 따른 기업과 투자자 세액 공제, 최대주주의 상속세 할증평가 폐지 등 이날 새로 발표한 내용도 모두 법 개정 사항이다. 정부는 연내 조세특례제한법과 소득세법, 상속세, 증여세법 등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대부분 사안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의 반발이 거센 것들"이라며 "실제 연내 법 개정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 단순히 이번 발표로 투심이 살아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의 운용역은 "현 시점에서 국내 증시 투자자의 투심 제1관건은 금투세 폐지 여부"라며 "다른 방안이 모두 통과되더라도 금투세 폐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증시 장기 투자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증권사의 PB는 "이번 발표엔 개인 투자자의 장기 투자를 유도할만한 실질적인 세제 지원책은 빠졌다"며 " 투자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갈 수 있는 안이 아닌 만큼 국내 증시 투자 유인책으로 강력하진 않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장기 보유 배당에 대한 감세, 국내 증시에 투자할 경우 소득공제나 세액공제를 투자자 개인에게 해주는 방안 등이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