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윤 정치학자,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 김대식 KAIST 교수, 조영태 서울대 교수…. 요즘 한국 사회에서 ‘핫한’ 지식인들이다.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삼성증권 자산관리(WM) 조직이 주최하는 포럼의 강연자들이다. 하지만 이 포럼의 청중은 일반 대중이 아니다. 국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의 자녀들이다. 삼성증권은 이들 자녀를 모아 ‘넥스트 CEO 포럼’을 운영 중이다. 삼성증권은 이 포럼 강연자로 과거 삼성그룹의 ‘선배 CEO’도 투입하고 있다. 이 포럼 회원인 예비 CEO들은 이곳에서 경영을 배우고 지식을 쌓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부모인 기업인들은 삼성증권을 찾아 거액의 프라이빗뱅킹(PB) 거래를 튼다. 회사 관계자는 “기업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가업승계와 자녀 교육 문제”라며 “이 같은 니즈를 충족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액 자산가를 유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영업 플랫폼으로 진화한 WM
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WM 업무가 증권사 성장을 위한 최일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WM 업무가 일부 자산가의 수익률을 올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세컨더리 비즈니스’였다면, 브로커리지 수수료가 낮아진 지금은 투자은행(IB) 업무까지 유치할 수 있는 WM이 증권사의 주요 업무로 부상했다. 증권사들은 기업인인 고액 자산가를 유치하기 위해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두 번의 스타트업 창업과 회수를 통해 수백억대 부를 거머쥔 30대 창업가 A씨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거래를 튼 한 증권사 베테랑 프라이빗뱅커(PB)로부터 꾸준히 비상장 스타트업 정보를 받으며 투자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 중에선 수십억원의 현금이 오가는 대형 투자 건이 적지 않다. A씨는 “솔직히 창업 전문가 시선에서 봐도 알짜 거래를 들고 와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 PB는 한 식음료 스타트업을 창업한 B씨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회사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향후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게 확실해 보여서다. 해당 PB는 “이 창업자는 당장 거액을 금융상품에 투자할 현금은 없지만 향후 회사 내 IB 분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WM은 자산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서도 진화하고 있다. 단순한 금융투자뿐 아니라 가업승계, 상속·증여, 이와 관련한 절세 등을 총괄하는 ‘집사’ 역할을 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 기존 ‘가업승계연구소’ 조직을 30억원 이상 자산을 가진 이들이 가입할 수 있는 GWM(Global WM) 조직에 편입했다.
GWM은 회원들에게 글로벌 금융투자, 세무, 부동산, 상속·증여, IB 등 전문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조직. 여기에 최근 자산가들의 관심이 큰 가업승계 분야를 추가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결국 고액 자산가는 승계와 자산 이전, 절세가 관심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익률이 아니라 신뢰를 팝니다
과거 증권사를 비롯한 금융권 WM 조직은 자산가들에게 금융상품을 권유해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을 주로 펼쳤다. 많이 팔고 수익률이 높을수록 PB가 성과급을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 같은 구조에서 PB의 욕심과 일탈, 펀드 관련 금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자산가들의 니즈가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증권사의 WM 조직관리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금융투자 수익률이 높은 PB가 아니라, 해당 WM고객으로부터 IB를 비롯한 다른 매출을 이끌어내는 PB를 선호하고 있다. 단순히 WM 부문이 아닌 전체 회사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게 된 것이다.
글로벌화하는 고액 자산 투자
자산가들의 투자 방향이 국내에서 국외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증권사들도 WM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최근 자산가들은 특히 미국 등 해외 자산에 관심이 많다는 전언이다. 연령대가 있는 자산가의 자녀들이 미국 등 해외 현지에 살고 있거나 현지 거처를 마련해 놓으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박재현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그룹장(전무)은 “연령대가 있는 자산가는 미국 임대수익이나 재산 증여 등에 관심을 두고, ‘영리치’들도 글로벌 투자에 적극적”이라며 “증권사들은 해외 주식과 부동산, 국채 등 다양한 해외 투자 역량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한신/류은혁/이시은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