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일본을 두고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당시 일본이 고도 성장기를 맞아 국가와 기업의 경제적 성장이 두드러졌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에는 별다른 개선이 없는 상황을 반영한 말이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4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세금 때문이다.
현재 여당과 야당 모두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가 과도하다는 이유로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바뀌지 않은 과세표준 때문에 과거에는 부자들만 내던 세금이 이제는 중산층에도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속세와 종부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소득세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 10년차의 평균 연봉이 8000만원대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10년 정도 하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시기다. 그런데 이 소득에 대한 세금 부담은 상당하다. 2024년 소득세 과세표준을 보면 8800만원 이상부터 1억5000만원까지 소득에 대해 소득세율 35%가 적용된다. 여기에 소득세의 10%를 지방소득세라는 명목으로 부과한다. 따라서 소득세율이 35%인 사람은 지방소득세 3.5%를 추가로 내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 4.5%, 건강보험 4%, 고용보험 0.9% 등 소득의 약 9.4%를 추가로 떼간다. 국민연금은 나중에 돌려받는다고 하지만 당장 쓸 돈이 줄어드는 측면에서 세금과 같은 부담을 준다.
이 모든 부담을 합치면 과세표준이 8800만원 이상인 사람에게 8800만원 초과 금액에 대해 적용되는 세율은 47.9%에 달한다. 예를 들어 과세표준이 8900만원인 사람은 마지막에 번 100만원 중 집에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이 52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많이 벌었으니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8000만원 이상 소득에 부과되는 세율 35%는 1987년에 만들어진 법이다. 무려 37년 전이다. 1987년 발간된 ‘여성동아’에 따르면 당시 서울 목동 7단지 115㎡ 아파트 시세는 6000만원, 압구정 현대 3차 109㎡ 아파트 시세는 8200만원이었다. 1987년 8000만원의 소득을 현재 아파트 시세로 환산하면 약 24억5000만원에서 30억원 정도 된다. 당시 35%의 소득세율은 강남에 있는 초고가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연봉을 버는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세율이었다.
물론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올랐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36년간 연평균 연봉 상승률 7.1%를 적용해 계산해 보면, 1987년의 8000만원은 2024년 약 10억원의 가치가 있는 금액이다. 대기업 부회장이나 사장급은 돼야 받을 수 있는 연봉에 내던 세금을 대기업 10년차 직장인도 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세표준은 입법부에서 정한다. 입법부가 그동안 얼마나 직·간접적으로 국민을 힘들게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입법부에 최대한 양보를 해 36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 3.4%를 적용해도 35% 세율은 현재 약 2억7500만원 이상 소득에 부과돼야 하며, 24% 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4600만원 이상도 1억6000만원 이상으로 상향돼야 한다. 이는 현재 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의 3배에서 4배 수준이다. 직장인 연봉은 100% 세원으로 파악이 가능한 까닭에 월급쟁이 지갑은 ‘유리 지갑’이라는 말이 있다. 1987년에는 소득을 파악하는 것이 힘들고 그래서 파악된 소득에라도 높은 소득세율을 적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월급쟁이의 유리 지갑과 같은 100% 투명한 소득에 낮은 소득세를 부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입법부는 지금이라도 소득세 과세표준을 상향 조정해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국민을 위한다는 입법부가 37년 묵은 소득세 과세표준을 고치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나? 세금이 국민의 삶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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