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장애인석은 없어요. 장애인석 운영은 제작사 결정이라, 제작사에 다시 전화해 보셔야 해요.”
대학로 공연장 장애인석 보유 여부를 확인하고자 극장에 전화한 후 들린 답변이다. 장애인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공연 제작사에 전화를 걸어 휠체어 좌석 위치, 예매 방법, 전동 휠체어 접근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3 공연예술 조사'에 따르면 대학로 극장 127개 중 장애인석을 보유한 극장의 비율은 26.1%(33개)로 저조한 수치다. 장애인석이 부족해 공연 관람에 불편함은 물론, 화장실, 엘리베이터 등 공연장 시설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과연 공연장은 지체 장애를 비롯한 시각, 청각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관객을 환영하고 있을까.
지난 5월, 서울 대학로 극장 2곳을 방문해 장애인 문화 향유권 실태를 조사했다. 체크 리스트 항목은 공연 서비스 접근성(1번~3번), 공연장 시설 접근성(4번~7번)으로 구성했다. A극장은 오픈런 뮤지컬을 상연 중인 150석 규모의 극장으로 혜화역으로부터 200m 이내에 위치해 있다. B극장은 총 2개의 관으로 구성돼 있고, 현재 공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뮤지컬을 상연하는 300석 규모의 극장이다. B극장 역시 혜화역으로부터 170m 이내에 위치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 '베리어 프리' 공연 운영 無
A, B극장의 공연 모두 자막, 음성 해설 및 수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명 ‘배리어 프리(문화 환경 접근에 장애물이 없는 환경으로 만들려는 움직임)’ 공연 회차를 별도로 운영하지 않았다. 또한 접근성 매니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접근성 매니저는 공연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장애인 관객을 위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제작사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이자, 교통 약자 동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는다.접근성 매니저 개념을 도입한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는 “접근성 매니저가 공연 제작 전반에 참여하고, 공연장 내부뿐만 아니라 공연장 안팎으로 장애인 관객을 안내한다는 점에서 관객 안내원, 하우스 매니저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B극장 관객 안내원 ㄱ씨(27)는 “접근성 매니저가 상주하지 않지만, 장애인 관객이 방문할 때 관객 안내원이 전담해 개별 안내를 맡는다”며 “1관의 경우 가변형 휠체어석으로 안내하고 수동 휠체어는 수용할 수 있는 좌석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 B극장 모두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휠체어석 관련 정보를 예매 시 안내 사항을 별도 게시하지 않았다.
오래된 대학로 극장 장애인 관객 배려없이 건물 증축
A, B극장 건물 내외부 경사로의 경우 모두 법률 시행규칙이 규정한 ‘기울기 5도’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A극장은 복도 폭이 좁아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객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울뿐더러, 점자 블록을 설치하지 않아 시각 장애인들이 진입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B극장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다. B극장은 각 엘리베이터 층, 건물 입구, 계단 앞, 화장실 입구 앞에 모두 점자 블록을 설치해 시각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고려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B의 입구 앞에는 턱이 1.8cm 정도 높게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휠체어 관객 혹은 휠체어 관객의 보호자가 힘을 줘야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화장실의 경우, B극장은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일반 화장실과 구별해 따로 칸을 설치해 두고 있어 휠체어 회전 반경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A극장은 장애인 전용 칸을 따로 마련해 두지 않았으며 문의 폭, 칸의 폭 모두 좁아 휠체어 진입이 어려워 보였다.
점검 결과 두 대학로 소극장은 ‘장애인, 노인, 임산부로서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동등하게 이용(장애인 편의법 4조 접근권)’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장 시설 접근성 부문을 보완하는 건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극장 자체 물리적, 구조적인 설계와 관련되어 있어 막대한 예산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한 공연 제작사 관계자는 “대학로 극장들이 오래된 경우가 많아 장애인 관객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환경이었다”며 “‘배리어 프리’ 공연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개선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립 정동 극장 연극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2024)’, 국립극단 ‘활화산(2024)’ 등 최근 국공립 극장을 중심으로 개방형 음성해설, 수어 통역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연은 증가하는 추세다.
다수의 ‘배리어 프리’ 공연 제작에 참여한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는 “배리어 프리라고 해도 실제로는 ‘프리’하지 않은 서비스와 공연장 시설이 아직 많다”며 “‘배리어 프리’보다 공연 서비스와 공연장 서비스의 수준과 변화를 표현하는 ‘접근성’ 용어를 사용하기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완벽한 ‘배리어 프리’를 단숨에 이룰 수 없으니 접근성 수준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는 게 그의 의견이다.
국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4조 제2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및 문화/예술 사업자는 장애인이 ‘문화와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정당한 편의’는 장애인의 문화와 예술 활동을 보조하기 위한 휠체어, 보조 인력의 배치, 관련 정보 제공, 활동 참여 및 향유를 위한 안내 시설, 관람석 등 시설 설치 및 개조도 포함된다. 장애를 떠나 문화 향유권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기 위한 변화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김윤영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