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 실선을 침범해 교통사고를 냈더라도 종합보험에 가입했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백색 실선을 ‘통행 금지 안전표지’로 보고 ‘특례 조항’을 적용하지 않던 판례가 약 20년 만에 바뀐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공소를 기각한 원심 판결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확정했다. 재판부는 “백색 실선은 통행 금지 안전표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침범해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반의사불벌죄 규정 및 종합보험 가입 특례 규정이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하더라도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거나 운전자가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처벌하지 않는 특례 조항을 두고 있다. 다만 운전자에게 특정한 과실이 있으면 처벌해야 하는데, 통행 금지 안전표지를 위반했을 때가 이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2004년 4월 통행하고 있는 차의 진로 변경을 금지하는 안전표지인 백색 실선에 대해 통행 금지 안전표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백색 실선을 침범하는 교통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특례 조항을 적용받을 수 없어 무조건 기소 대상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종전 판례를 20년 만에 뒤집었다. 대법원은 “도로교통법은 백색 실선에 대해 금지 사실의 통보, 공고 절차, 규정 체계 등을 일반적인 통행 금지 안전표지와 달리 취급하고 있다”며 “진로 변경 금지 위반을 통행 금지 위반으로 본 것은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백색 실선이 설치된 교량이나 터널에서 백색 실선을 넘어 앞지르는 경우 별도의 처벌 특례 배제 사유가 규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21년 7월 백색 실선이 설치된 1차로에서 2차로로 진로를 변경하다가 뒤따라오던 택시를 급정거하게 해 승객인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백색 실선은 통행 금지 안전표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공소를 기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통행 금지’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한 데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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